여객기 2층은 전석이 비즈니스 클래스인데 승객 90%가 30~70대 남성들이었다. 거의가 고도의 전문직 종사자이자 섬세하게 코디한 의상에 피곤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는 스튜어디스로 젊은 여성을 고용하는 촌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고 다시 사회로 나온 돌봄의 달인 중년 여성들이 기내의 돌봄을 맡아간다. 비행기를 갈아 타려고 잠시 쉬어가는 공항 비즈니스 라운지에서는 요리사나 샤워실을 관리하는 하우스 키퍼나 보이지 않게 주변을 깨끗이 하는 청소부는 예외 없이 외국계 이주민들이다. 이는 지구상에서 국가가 여전히 헌법을 지키고 주변국과의 협력을 도모하기도 하는 북유럽 사회의 단면이다. 이주민의 자녀들이 비즈니스석을 탈 수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지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1950년대부터 노동력 부족 상태로 들어간 유럽은 이주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번 시리아 난민 사태에서 현격한 활약을 한 독일 사례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독일은 1950년대 후반부터 노동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해서 1971년 220만명 이주로 전체 노동자의 10%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사들은 이때 초대를 받아 갔던 경우이다. 1970년대 중반, 독일 정부는 더 이상 노동력이 필요 없다는 판단 아래 이민을 잠시 제한했다. 동·서독 통일 이후 신경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면서 독일은 다시 전문 인력을 수용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2005년 컴퓨터 분야 등 전문가들에게 ‘그린카드’(미국식 영주권)를 주는 새 이민법을 발효하는 등 이주민 환대를 통해 지금은 지속적 경제성장을 하는 중이다. 독일이 이번 시리아 난민을 대폭 수용하기로 한 것은 인도주의적 시민의식의 영향도 크지만 경제 활성화와 노령화 사회 문제의 해결, 그리고 글로벌 시민성 문제를 풀어낼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반이민 정서가 일고 있고 백만을 넘는 숫자를 감당하기 어렵겠다는 우려 속에 ‘무제한 수용’을 ‘제한적 관리’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이번에 독일은 난민과 이주민 문제에 대해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타임>은 이번 시리아 난민 사태를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난민 사태라고 소개하면서 이는 일국주의로 풀릴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였다. 2014년 매일 평균 4만2500명에 이르는 난민이 생기고 있는데 이 숫자는 세계에서 24번째로 큰 나라의 인구수에 버금가며 시리아 접경인 레바논은 전인구의 25%가 시리아 난민으로 국가가 위태로울 지경이라고 한다. 터키는 190만명의 최대 난민 수용국인데 최근 유럽연합 지도자들이 난민 논의를 시작함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북유럽이 좋은 모델이 되고 있지만 사실 북유럽은 1·2차 대전 이후 세계 패권 따위와 상관없이 자국민을 보호하는 지역 국가가 되기로 결정하였기에 막상 글로벌 문제를 푸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세계 패권을 쥐었던 미국과 영국이 세계 규모를 다룬 경험이 많고 현 사태에 더 많은 책임이 있지만 책임을 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전쟁만이 아니라 기후변화 등 각종 재난과 재앙의 위험성을 고려하면 전세계의 난민화라는 차원에서 초국가적 방안을 논의하는 장이 빨리 열려야 할 것이다.
나는 남북 대치 상황이나 한국 정부의 핵발전 관련 안전 불감증 등을 고려하면 한국 같은 나라야말로 난민 논의를 시작할 가장 적격인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시리아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난민이 되면 일본이나 중국에서 받아줄까? 동해/일본해에서 보트피플로 죽는 건가? 그 전에 이 나라를 뜨는 편이 나을 건가? 그러나 어디로?”라고 묻는 한 네티즌의 질문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지금과 같은 재난과 재앙과 적대의 질서 안에서는 지구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 난민을 돕자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코스모폴리탄 엘리트 시민’이 아니라 ‘코스모폴리탄 난민’으로 세계 여론의 장을 열어가는 데 한몫을 하자는 것이다.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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