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존 베이너 의원(공화당)이 하원의장직을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베이너는 하원의장 재임 중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는 민주당 소속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협상을 중시했지만 공화당 내 강경파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그런 압박은 그가 오바마 대통령과 타협의 정치를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공화당 내 상당수 의원들은 정부 운영을 위한 예산 승인과 정부부채 상환을 위한 적자재정 확대 같은 필수 안건들에서도 베이너 전 의장의 리더십을 거부해왔다. 그들은 연방정부의 업무중단 같은 극단적 조처마저도 좋은 일로 여기는 것 같다. 베이너는 자신이 하원의장직을 유지하는 한 공화당 내부에서의 갈등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 때문에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화당은 당혹스럽게도 후임자를 찾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당내 모든 계파의 지지를 받을 후보도, 기꺼이 차기 하원의장직을 맡을 후보도 없어 보였다.
결국 공화당은 폴 라이언 의원에 주목했다. 라이언은 2012년 대선 때 밋 롬니 공화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 경력이 있다. 그는 현재 하원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세입세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라이언은 처음엔 하원의장직에 관심이 없고 세입세출위원장직이 더 좋다며 당내 추대를 사양했다. 하지만 공화당 의원들이 ‘주말엔 가족과 함께’ 같은 그가 내건 여러 조건들을 들어주겠다며 설득하자 결국 하원의장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결심했다. 공화당은 상·하 양원에서 다수당이다.
미국 언론들은 라이언이 예산의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꿰찬 전문가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그의 출마 소식을 전했다. 특히 언론은 그의 정치적 성향이 극우파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라이언은 정부가 운용하는 사회보장제도를 민영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는 2005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사회보장제도의 민영화를 시도했던 당시에 자신이 내놓았던 민영화 방안을 새삼스레 다시 꺼내들기도 했다. 라이언은 또 노년층을 위한 공공의료보험인 메디케어의 민영화를 주장하고 있다. 메디케어는 미국 서민층 다수의 의료복지를 보장하고 있어 민영화 반대 여론이 높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의 현행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는 운용관리비가 민영화 시스템에 견줘 저렴한 매우 효율적인 프로그램이다. 사회보장보험의 경우 영국이나 칠레 같은 나라의 민간사회보험 운용비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라이언은 이처럼 핵심적인 정부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민영화하려는 것에 더해, 관련 예산을 아예 삭감하자고 주장해왔다. 그는 재정균형과 공공부채 해소를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정부부채를 없애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 예산 중 군사 부문과 무관한 항목은 삭제하자는 제안까지 내놨다. 세금은 오히려 깎으면서 말이다(감세는 라이언의 또다른 핵심 의제이기도 하다). 이는 공항, 도로와 교량, 형사사법, 식품 감독을 포함해 정부가 해야 할 거의 모든 공공정책을 포기하자는 거나 다름없다.
라이언은 실제로 2011년 하원 예산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직후 이런 예산안을 내놨다. 그는 당시 자신의 예산안을 관철하기 위해 초당적이고 독립적인 의회예산국(CBO)을 설립하자고 하기도 했다. 정부가 예산에서 재량껏 쓸 수 있는 금액을 2050년까지는 국내총생산(GDP)의 3.5%까지 줄이겠다는 의도다. 그럴 경우 사회보장과 메디케어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에서 정부가 임의로 집행할 돈이 사라지게 된다. 라이언은 그러나 현재 국내총생산의 약 3.5%를 차지하는 국방비 지출은 현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라이언이 자기 식대로 가게 되면 국방비를 제외한 모든 정부 예산은 제로가 될 것이다.
다행히도 라이언이 연방예산을 2050년까지 계속 주무를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언론이 라이언의 극단주의적 시각을 대중에 알리지 않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미국 시민들이 최근 몇주 동안 접한 언론 보도들만 놓고 보면, 라이언은 분명 숫자(예산안 조정)만 좋아하는 걸로 알 게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 시민이 라이언이 수리에 밝은지 아닌지를 아는 것보다는 그가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는지를 아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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