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되는 경제 지표들은 줄줄이 ‘몇년 만에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대표적인 게 제조업 매출이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2014년 기업 경영 분석’을 보면, 지난해 국내 제조업 매출이 1.6% 감소했다. 1961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였다.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제조업은 1998년 외환위기 때도,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성장을 멈추진 않았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발표한 ‘2015년 10월 수출 실적’을 보면, 수출액이 전달에 비해 15.8% 급감했다. 감소 폭이 6년 만에 가장 컸다.
8일에는 이런 통계도 나왔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이 50개가 넘는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다.
국민들이 몸으로 체감하는 경제 사정은 지표보다 훨씬 더 나쁘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22일 발표한 ‘3분기 체감경기 특징과 시사점’을 보면,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성장률은 -0.2%(실제 2.6%), 실업률은 15.2%(3.7%),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0%(0.7%)였다. 이들을 종합한 ‘체감 경제고통지수’는 22포인트로, 정부 통계로 산출한 8.5포인트의 2배가 넘는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대내외 경제 여건이 지금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성장 둔화와 미국의 금리 인상은 가뜩이나 고전하고 있는 수출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2분기까지 가까스로 7%를 지켜온 중국의 성장률이 3분기에 6.9%로 떨어졌다. 중국은 우리 수출에서 4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교역 상대국이다. 6일 미국의 고용 지표가 예상보다 좋게 나오면서 미 연방준비제도가 12월에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신흥국들의 경제가 불안해져 우리 수출에 부담이 된다.
정부는 몇몇 지표들을 들어 내수가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개별소비세 인하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일회성 행사에 따른 ‘반짝 효과’에 그칠 수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 11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부채와 청년 4명 중 1명이 실업자인 취업난이 해소되지 않고는 소비가 살아나지 못한다는 얘기다. 빚 갚기에 급급한데, 일자리가 없는데 무슨 돈으로 소비를 하겠는가?
주요 기업들이 최근 경영 사정 악화를 이유로 들어 인력 감축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 ‘일자리 축소→소득 감소→소비 침체→투자 부진→일자리 축소’의 악순환이다. 요즘 기업이나 금융계 인사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내년, 내후년엔 정말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도 이런 사실을 상세히 보고받고 있을 터이다. 그런데도 딴소리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올 한해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따라 우리 경제를 ‘기초가 튼튼한 경제’, ‘역동적인 혁신경제’, ‘내수·수출 균형경제’로 거듭나도록 틀을 세우고, 기반을 다지는 한해였다. (중략) 세계 경제의 어려움 속에서도 국내외의 여러 지표는 우리나라가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자평했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얘기다.
박 대통령은 또 “경제와 민생 그리고 우리 청년들의 미래를 위한 마음에는 여와 야, 국회와 정부가 따로 없다. (중략) 경제의 힘찬 재도약과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나가자”고 강조했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 가는 길은 거꾸로다. 국정교과서가 그렇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데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사회 갈등과 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대통령의 이런 언행을 보면서 당분간 경제가 나아지기는 그른 것 같다는 걱정이 든다.
안재승 경제 에디터 jsahn@hani.co.kr
안재승 경제 에디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