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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북한의 편집증과 펜타곤 / 존 페퍼

등록 2015-11-08 18:53

북한은 항상 ‘외부의 침투’를 걱정해왔다. 모든 외국 방문객을 잠재적 스파이로 바라본다. 대부분의 외국 특파원 상주도 막고 있다. 북한으로 반입되는 전자장비들도 꼼꼼하게 규제한다.

특히 자선단체 직원들은 북한의 의심을 받는다. 기근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식량지원 모니터 요원들의 이동을 제한했다. 무엇보다 한국어 구사요원의 모니터 활동을 금지했다.

그럼에도 몇몇 단체들은 북한 당국과 신뢰 관계를 구축해왔다. 인도주의 단체들은 북한에 풍력발전 시설이나 온실, 에너지 효율적인 가구들을 지었다. 독일 재단들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대한 워크숍을 조직하기도 했다. 평양과학기술대학은 엘리트 학생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외부로부터 수많은 언어교사와 컴퓨터를 들여오기도 했다.

이런 시점에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인터셉트>의 보도가 나왔다. 미국 국방부, 즉 펜타곤이 인도주의 단체의 대표를 대북 스파이 활동에 기용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폭로는 북한 당국이 가장 우려했던 상황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물론 대단한 스파이 활동은 아니었다. 또한 신앙에 바탕을 두고 활동하는 ‘인도주의 국제봉사 그룹’(HISG)으로 알려진 이 단체는 인도주의 지원단체들 사이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대표인 케이 히러민은 북한을 세번 다녀왔을 뿐이다. 히러민은 겨울 옷을 운반하면서 성경을 그 속에 숨겨 배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북한에서 펜타곤의 눈과 귀처럼 활동했다.

매슈 콜 기자는 기사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북한 내부에 미국의 정보 자산이 거의 없기 때문에 히러민 임무의 대부분은 군사장비들을 이동시킬 수 있는 경로와 북한 안팎에서 잠재적인 은밀한 정보원을 찾는 것이었다. 펜타곤은 궁극적으로 히러민이 구축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감지 장치와 소형 무선표지를 이동시키려 했다.”

외국인들은 북한에서 이동의 통제를 엄격하게 받기 때문에 북한 정부가 눈치채지 못하게 이런 장비들을 몰래 반입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히러민과 그의 동료들은 북한 안에서 많이 돌아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북한을 겨우 세번 방문했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수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펜타곤은 2013년 이 프로그램을 종료시켰다. 추정컨대 효용성에 비해 골칫거리가 더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펜타곤의 작전은 미국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집권 기간 동안 군과 복음주의 기독교 간의 밀접한 협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구상을 주도한 사람은 펜타곤 정보담당 부차관까지 승진한 윌리엄 보이킨 예비역 중장이었다. 그는 미군을 세계 복음주의 군대로 이용하고 싶다는 욕구를 숨기지 않은 인물이다.

‘인도주의 국제봉사 그룹’의 스파이 행위는 북한의 경계심이 외부인의 의도에 대한 단순한 편집증 때문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북한의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지난 수년 동안 북한인권법처럼 북한 정부를 약화시키는 시도들에 공공연하게 자금지원을 했다.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 탈북자들을 돕는 단체들도 북한으로 성경을 몰래 들여보내는 데 상당한 자원을 투입해왔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펜타곤은 북한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따라서 북한은 끊임없이 ‘예측할 수 없는’ 국가로 묘사된다. 이런 표현은 북한 정책의 일관성보다는, 아마도 북한의 행동을 예측하지 못하는 미국의 무능력과 더 관련돼 있는 것 같다.

이번 사태는 향후 대북 인도주의적 활동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상당수 대북 민간단체들은 북한 주민의 생활 조건들을 개선하기 위해 정직하게 노력했다. 그들은 미국 정보기관의 정보원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그들은 북한 정부의 신뢰를 얻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모든 나라가 스파이 기관을 운영한다. 북한도 그런 의심을 살 만한 활동들을 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스파이 활동과 인도주의, 기독교 복음주의 영역을 뒤섞는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외부세계에 더 문을 열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해왔지만, 이런 잘못들은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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