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청와대를 출입하다, 3년간 워싱턴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2012년 8월 귀국하면서 정치팀장을 맡았을 때다. 새누리당 기사를 데스킹하다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박 얘기만 잔뜩 써놓으면 어떡하냐? 친이 얘기도 들어야지.” 전화 저편에서 후배가 답답하단 듯이 말했다. “지금 새누리당에 친이가 어디 있어요?” “이재오, 정두언….” “숨만 쉬죠.”
며칠 뒤, 후배가 ‘친박 계층도’를 보내왔는데 핵심 친이였던 이들도 어느새 ‘친박’으로 분류돼 있었다. 새누리당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비해 확연히 다른 게 이 지점이다. 새누리당 의원들 상당수는 어릴 때부터 어른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던 모범생들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몰입도와 집중력이 남다르다. ‘보통 사람들’은 아니다. 가장 큰 특징은 ‘이로움’에 따라 움직이고, 또 그런 움직임이 당내에서 심정적으로 용인된다는 점이다. 내분을 겪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똘똘 뭉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고야 마는 토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던 행태도 납득될 때가 많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도 그러하다. ‘자학사관을 없애고 국민의 혼 바로잡기’? 그렇다면 ‘검인정 강화’를 통해 은밀·은근하게 하는 방식이 상대적으로 더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국정화만이 살길’이라며 북 치고 꽹과리 두드리는 걸 택했다. ‘교과서’가 아니라 ‘국정화’가 목적인 듯하다. 그 결과 ‘국정화 반대’라는 세력을 만들었고,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도 하락했다. 이럴 줄 몰랐다거나, 알면서도 ‘신념’ 때문에 밀어붙였다면 ‘바보’다. 2017년 나올(?) ‘국정 교과서’가 다음 정부에서도 계속되리라 믿는다면, 더 ‘바보’다. 그런데 새누리당에 ‘바보’는 잘 없다. 처음에는 당 내부에서도 대부분 ‘국정화’에 부정적이었지만, 지금 새누리당 안에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찾긴 힘들다. 청와대가 처음에는 책임 안 지려고 “교육부가 알아서…”라며 떠넘기려 했으나, 교육부가 계속 미적대자 할 수 없이 박 대통령이 친히 나서 ‘국정화’라고 명확한 지침을 내린 이후부터다.
한나라당 2007년 경선에서 친이-친박계가 자주 비교되곤 했는데, ‘친박계’의 가장 큰 특징으로 ‘로열티’(충성심)가 거론되곤 했다. 친이계의 로열티가 떨어지는 이유론 이명박 후보가 건설회사 출신이어서 캠프 구성도 건설회사처럼 하도급 끌어모으듯 구성하고, 집 다 지어지면 흩어진다는 식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전 와이에스(YS)-디제이(DJ)계처럼 동지적 관계도 아니고, 뚜렷한 이념으로 뭉쳐진 집단도 아니다. 그래서 친이계의 이명박 지지를 ‘벤처투자’라 부르기도 했다.
이에 비해 친박계는 열세임에도 그대로 박근혜 후보를 좇으니 충성심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로열티’를 강조하는 곳은 대체로 후진 조직이다. 조직이 지원이 부실할 때, 개인이 자질이 부족할 때 ‘로열티’를 들먹인다. 다들 친이가 못 돼 안달이었는데, 그때 그들은 왜 친박으로 남았을까? 그들 중에는 친이가 못 돼 친박에 머물렀던 이들도 많다. 꽤.
그리고 친박에는 있고, 친이에는 없는 게 하나 있다. 지역기반.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과 장관을 지낸 인사 가운데 현재 10명이 총선에 나가려 한다. 기존 지역구 의원을 제외한 5명 중 4명은 대구, 1명은 서울 서초를 지원한다. 이게 충성인가? 미국 경제학자 맹커 올슨은 정권을 “유랑 도적단”이라 했다.
권태호 디지털 에디터 ho@hani.co.kr
권태호 디지털 에디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