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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혐한 바이러스’ 퇴치법

등록 2005-10-16 17:56수정 2005-10-17 01:45

박중언 도쿄특파원
박중언 도쿄특파원
아침햇발
지난 7월 출간 전부터 파문을 불러온 일본 만화 <혐한류>의 열풍이 한풀 꺾였다. 주문이 쇄도했던 일본 인터넷서점 아마존의 판매순위에서도 이 만화는 20위권 바깥으로 밀려나 있다. 출판 준비가 한창인 2탄이 나올 때까지 소동의 진원지인 인터넷도 좀 잠잠해질 터이니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내용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일본 극우의 과거사 왜곡과 근거없는 한국 폄하를 섞은 ‘한국 때리기 종합판’이다. 한국에서 격렬한 비난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혐한류>와 왜곡된 역사교과서는 갈수록 고조되는 일본의 국가주의와 우경화 흐름의 산물이다. 내용은 만화 쪽이 더 극단적이다. 그럼에도 이 만화를 왜곡 교과서와 같은 한-일 관계의 암적 존재라고 하기는 어렵다.

교과서는, 절대시해서는 안되지만, 한 사회의 보편적 인식체계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일본인 다수의 공통된 역사인식을 반영한 것이 역사교과서다. 현재의 한-일 관계는 이런 역사인식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그것을 뒤엎으려는 조직적 움직임이 바로 극우의 왜곡 교과서 채택 공세다. 그래서 전면적 봉쇄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비해 <혐한류>는 출판시장에 나온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이 책은 전파력과 독성이 강한 만화다. 발행부수도 두달 만에 30만부를 넘겼다. 그렇다고 해도 일본 젊은이들이 열린 사고를 한다면, 이 만화로 인한 오염을 정화하는 작업이 힘든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때 기승을 부리는 ‘바이러스’ 정도로 볼 수 있다. 이 만화의 열풍이 한창이던 시기 훨씬 많은 한국의 문화상품이 ‘백신기능’을 수행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일본 젊은층의 <혐한류>에 대한 열광은 공세라기보다 반작용의 성격이 짙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의 위상이 갑작스레 높아진 데 따른 반감에서 출발했다. 특히 한국 드라마와 스타들에 몰두하는 중년 여성팬들의 극성스런 모습이 이들에겐 못마땅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한국이 언제부터 그렇게 대단한 나라가 됐느냐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반감이 한국 깎아내리기로 이어진다.

자신들의 혐한 정서가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이 이들을 더욱 열받게 만들었다. 일본 언론들은 한류 열풍에 편승해 수입을 챙기는 데 맛이 들어 한국의 부정적인 면에는 눈감고 있다고 이들은 믿는다. 최근 <아사히신문> 서평에서 한 평론가는 “젊은 독자들이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할 수 없게 하는 분위기가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대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혐한류>는 이런 정서를 가진 젊은이들의 자기만족과 존재과시, 공감대 확인을 위한 매개체 구실을 한다.

‘혐한 바이러스’는 맹렬하게 일본 젊은이들의 사고를 오염시킨다. 그렇지만 ‘건전한 부작용’도 동반한다. 이들이 그동안 골치아프게 여겨온 두 나라의 과거사에서 고개를 돌릴 수 없게 만든다. 양국 국민의 바람직한 상호이해를 위해선 과거사 문제를 비켜갈 수 없는 만큼 이는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에겐 역지사지의 계기도 제공한다. 일본 얘기만 나오면 “쪽바리 놈들이…”라며 비하하는 게 우리의 일상적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좋은 쪽의 관심도 무관심보다는 낫다는 말이 있다. 한류 열풍과 한국 혐오는 한국이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는 확증이다. 그 반응이 긍정과 부정의 양면으로 엇갈려 나타날 뿐이다. 혐한 바이러스 퇴치에 필요한 것은 극약 처방이 아니라 기초체력 강화다. 이런 소동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여유와 더 많은 상호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박중언/도쿄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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