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 이후 미국 안팎에서 지상군이 곧 투입될 것처럼 떠든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지상군 투입은 없다고 몇 차례나 명확히 단언했다.
그렇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임기 안에는 지상군을 파견하지 않을 것이다. 공화당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지상군 투입은 불가능하다. 미국은 그럴 능력이 없다.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의 직접 경비는 1조달러이다. 간접비용을 합치면, 3조달러나 된다.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5조5천억달러이다. 6년치 미국 국방비이며, 한국 국내총생산의 4년치가 넘는다. 미국은 이 천문학적인 돈을 이라크에 쏟아붓고도, 이슬람국가라는 괴물만 만들어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 식으로 이슬람국가를 평정하려면, 적어도 이라크 전쟁 때 투입된 지상군 30만명의 2배, 기간은 8년여가 걸릴 것이란 분석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전역이 광역화된데다, 안정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공은 장담 못한다. 아니, 이라크 전쟁 식의 전략전술이라면 실패가 분명하다.
미국은 2007~2010년 동안 한때 이라크 내란 양상을 많이 잠재운 적이 있었다.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과 그 지지 기반이던 수니파 주민들을 분리시키는 반내란전략이 효과를 봤다. 미군 철수 뒤 이라크 시아파 정부의 종파적 국정 운영과 시리아 내전이 터지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이는 이슬람국가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 퇴치의 핵심이 군사력보다는 주민의 지지 기반을 빼앗는 정치사회적 해법임을 보여준다.
미국은 지난해 6월29일 이슬람국가 선포 이후, 공습에 의한 봉쇄와 현지 지상군 병력을 양성해 퇴치하겠다는 장기적 목표를 추구한다. 현재로선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이다.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 전략은 올해 상반기부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미군은 작전을 시작한 지 15개월이 지나면서 현지 정보망 구축으로 공습의 정확성이 높아졌다. 쿠르드족 민병대 페슈메르가는 파리 테러가 일어난 날 이슬람국가의 수도 격인 락까와 이라크의 두번째 큰 도시 모술을 잇는 보급로가 지나는 신자르 지역을 탈환했다.
이슬람국가가 10월 이후 베이루트 시아파 지구 연쇄테러, 러시아 여객기 격추 테러, 파리 테러 등을 감행하는 것은 자신들의 수세 국면을 말해주는 거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의 영역 구축이 한계에 봉착하자, 밖으로 나가 ‘적들의 심장부’를 교란하려는 거다. 공포를 유발해, 다시 한번 미국 등 국제사회의 헛발질을 유도하려는 거다.
테러가 노리는 것은 인적·물적 타격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인적·물적 피해가 자아내는 심리적 피해이다. 테러란 말뜻 그대로 ‘공포’이다. 미국은 공포에 질려,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채 테러와의 전쟁으로 달려갔다. 그 헛발질 속에서 이라크 전쟁이 강행됐고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은 더 커졌다. 그 결과가 이슬람국가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공포에 질려 9·11테러 공격 이후 나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전략은 이슬람국가에 뺏긴 영토를 되찾아오는 게 아니라 그런 극단주의 세력이 부상하게 한 역학구도를 바꾸는 데 초점이 있다”고 재확인했다. 또 “정치적 효과, 혹은 미국이나 내가 강해 보이게 하려고 행동을 취하는 것은 내가 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추수감사절 행사들을 이전처럼 진행했다. 전적으로 옳다.
이슬람국가의 테러는 더 일어날 것이다. 군사력을 더 동원한다고 막을 수 없다. 현재의 봉쇄 전략을 유지하면서, 이슬람국가의 기반인 수니파 주민들의 지지를 분리시키는 정치외교적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먼저 테러 세력들이 노리는 공포에 질리지 말아야 한다. 파리 테러로 아내를 잃은 한 시민은 “당신들을 결코 증오하지 않는다. 증오는 바로 당신들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테러에 임하는 최선의 전략이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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