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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12음기법으로

등록 2015-12-01 19:19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아기의 야간 잠투정이 부쩍 늘었다. 자다가도 한두 시간에 한 번꼴로 깨어나서 운다. 처음 잠이 깰 때 내는 가냘픈 신음 소리를 들으면 이야기책에 나오는 비극의 주인공들 같다. 마지막 성냥개비에 불을 붙인 성냥팔이 소녀가 되었다가,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인어공주가 되었다가, 혼자 집에 남아 밀린 설거지를 해야 하는 신데렐라가 되었다가 하는 것 같다. 사방이 캄캄하니 마지막 불을 꺼뜨린 소녀 심정이었을 것이다. 푹신한 이불, 그 망망대해에 출렁이며 떠 있으니 몸이 거품 같다고 느낄 것이다. 엄마도 아빠도 보이지 않으니 홀로 남겨졌다 여겼을 것이다. 작고 여린 비명에서 크고 우렁찬 울음에 이르기까지, 소리의 크기와 높낮이가 자유자재다. 저거 혹시, 12음기법이 아닌가? 12개의 반음이 주어진 시간 안에 모두 출현한다는 바로 그 무조음악 아닌가? 거기에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까지 자유롭게 구사하는 조그만 오케스트라가 안방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아침이 되면 내가 언제 울었느냐는 듯 눈을 뜨고 미소를 지을 변신의 천재가 저기 있다. 아기는 아직 말을 배우지 못했고 부모는 말을 배웠으니, 음악 대신 언어로 대응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언어에 12음기법을 적용하면 이런 방식이 될 것이다. 아가야, 알려진 모든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서 네게 “사랑한다”는 문장을 지어주마. 고백은 12음기법과 마찬가지로 어느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으니.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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