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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땅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 권혁철

등록 2015-12-02 18:35

도널드 트럼프 귀하!

저는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당신에게 별 관심이 없습니다. 당신이 온갖 기이한 행동과 막말을 일삼아도 신경 끄고 지냈습니다. 저는 미국 선거에 투표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당신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자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한국은 아무런 돈도 내지 않고 미국 안보의 덕만 보고 있다’는 이른바 ‘한국 안보 무임승차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런 주장을 처음 들었을 때는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과 너무 다른 이야기라 반박할 가치도 없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한국 안보 무임승차론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펴낸 책에서도 “2만8천여명의 미군이 북한과의 국경에 주둔하고 있는데 매일 위험에 처해 있다”며 “한국을 방어하는 건 오직 이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한국이 미군 주둔 비용인 방위비 분담금을 한해 9200억원씩 낸다’는 반론에 대해서는 ‘푼돈’(peanut)이라고 깎아내린 바 있습니다.

미국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당신의 이런 주장이 미국 중산층 백인 정서를 일정하게 반영한 것이라고 합니다. 트럼프 개인의 돌출 발언이 아니라는 겁니다.

먼저 ‘오직 2만8천명의 주한미군만이 한국을 방어한다’는 당신의 말에 분노와 모욕감을 느낍니다. 저는 23년 전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습니다. 지금도 국군 장병 63만명이 한국을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은 한푼도 내지 않고 있다’는 당신의 말은 1990년까지는 맞습니다. 미국은 1990년까지는 주한미군의 주둔 경비를 전액 부담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이 망하고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한국에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내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쌍둥이(무역·재정) 적자로 형편이 어려워졌고 한국 경제가 성장한 것도 이유였습니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내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는 매년 9200억원을 내고 있습니다. 한국의 비용 부담이 1991년 약 1천억원에서 2014년 9200억원으로 9배 이상 늘었습니다.

미군이 주둔하는 독일·일본이 내는 방위비 분담금(2013년 기준)을 국내총생산(GDP)에 견줘보면 한국이 경제적 능력에 비해 적게 내는 편이 아닙니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국내총생산의 약 0.068%입니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일본(0.064%)보다 약간 많고, 독일(0.016%)보다 휠씬 많습니다. 주일미군(3만6700명)과 주독미군(5만500여명)이 주한미군 규모보다 많습니다.

방위비 분담금 말고도 부동산 임대료 평가액, 세금 면제, 공공요금 할인, 기반시설 이용료 면제 등 주한미군에 대한 직간접 지원 비용도 만만찮습니다. 한국 국회의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매년 주한미군에 대한 직간접 지원비용은 같은 기간의 방위비 분담금보다 2배가량 많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권혁철 지역에디터
권혁철 지역에디터
직간접 지원금이 많은 것은 한국 땅값이 비싸기 때문입니다. 한국 국방부 자료를 보면,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공짜로 사용하는 땅이 1억796만2720㎡(2011년 기준)입니다. 이 토지의 전체 가격(개별공시지가)은 12조1132억원입니다. 이를 임대료로 계산하면 매년 5693억원입니다. 이런 돈을 모두 합치면 한국은 해마다 최대 3조원가량을 주한미군에 지원합니다.

미스터 트럼프, 이 돈이 ‘땅콩’으로 보이나요?

권혁철 지역에디터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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