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달 중소상인의 생존권과 유통산업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대형마트의 심야영업을 제한하고 휴일에 2번 의무 휴업하도록 한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재판부에서 현재의 대형마트들은 유통산업발전법상의 대형마트가 아니라면서,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제가 통상법에 위반되고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비례의 원칙 등에 위반된다고 판결해, 이러다가는 경제민주화 입법이 죄다 사법부의 심판 대상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상품 판매장소 외에 약국, 미용실, 식당 등 용역을 제공하는 장소까지 포함해 대형마트로 등록되고 관리되는 만큼 이를 포괄하여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처분을 한 것은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이번 판결의 더 중요한 의미는 우리 헌법상 ‘경제민주화의 원리’의 정당성을 천명한 데 있다. 일부 보수인사들 사이에 우리 헌법의 경제원리는 자유시장경제 원리여야 하고 재산권이나 영업의 자유는 불가침적인 헌법원리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의 경제원리를 자유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국가가 중소기업 보호,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 적정한 소득분배 등의 공익을 실현할 의무를 갖는 ‘사회적 시장경제’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대법원도 우리 헌법의 경제원리는 자유경제 원리를 ‘기본원칙’으로, 경제민주화 등 헌법이 직접 규정하는 목적을 위한 국가의 규제와 조정을 ‘실천원리’로 두고 있다며, 어느 한쪽이 우월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은 대형마트의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는 규제 입법이 대형마트의 경제상의 자유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대형마트와 중소상인 등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 등 공익 실현을 위한 목적을 갖고 있고 합리적인 수단에 의한 것이며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협정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통상협정의 개별조항 위반을 사유로 국가의 정부를 상대로 그 처분의 취소를 구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입법이 논의될 때마다 재벌 대기업들과 이에 호응한 일부 국회의원들은 경제민주화 입법의 위헌 주장이나 통상법 위반 주장이 상당한 근거가 있는 양, 경제민주화 입법을 저지하는 논리로 제기해왔다. 지난 18대 국회 때 입법화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제도 애초 대형마트의 진출 자체를 규제하려던 것이었으나, 통상법과 헌법에 위반된다는 시비로 7년 넘게 시간을 끌다가 타협책으로 겨우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재벌 대형마트들은 이 법률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19대 국회에는 대리점보호법, 중소상공인 적합업종 보호법, 복합쇼핑몰 진출 규제법 등 많은 경제민주화 입법이 빛을 보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통해 그동안 재벌 대기업들이나 이를 지지·엄호하는 정치세력들이 경제민주화를 위한 규제입법들을 공격하며 내세웠던 통상법 위반이나 위헌 시비는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치개혁은 경제개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민주주의의 황금기에 앞서 채무노예상태에 빠진 시민들을 중산층으로 살려내기 위해 정치개혁가 솔론에 의한 피나는 경제민주화 개혁이 있었다. 이제 국회가 분발할 때이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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