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 노조들의 깃발이 펄럭이는 뒤편에 자리잡았다. 차벽과 경찰이 두겹 세겹 가로막고 있어서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차가운 겨울 밤하늘 아래 칼날처럼 뻗어나가는 물대포를 향해 “쏘지 마, 쏘지 마”라고 외치는 게 고작이었다. 강한 금속을 자를 때 고압의 물을 칼로 사용한다는 것을 아는 나는 번쩍거리는 물대포의 포물선이 군중을 향해 들이대는 칼날처럼 느껴져 몸이 오싹하는 전율을 느꼈다.
다시 맞은 토요일. 차벽도 없고 경찰도 비켜나 있는 곳에서 군중 사이로 행상들이 “복면이요 복면” 하며 마스크를 팔고 다녔다. 간간이 탈을 만들어 쓴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맨얼굴인 그들과 함께 나로서는 조금 생경한 구호도 따라 외쳤다.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결국 3만원 날렸네.” “뭐 그렇지.” 조용히 물었다. “무슨 3만원요?” “오늘 일당 못 벌어서요.” 일용직 노동자나 알바생인 듯. 오전 근무만 하고 나와 오후 일당을 공쳤다는 이야기 같았다. 심상하게 말하는 그들을 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카카오 택시를 불러 타고 크리스마스 장식 산타와 사슴뿔 파티용 안경을 가득 싸들고 나와 여기저기 나누어 주기도 하며 유쾌한 복면으로 시위문화를 바꾸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참가한 나 자신이 스산하게 부끄러워서였다. 그 젊음이 포기한 3만원이 어떤 돈일까. 그들의 밥이, 라면이, 핸드폰 값이 되었을지도 모를 아쉬운 3만원.
또 다른 젊음들이 여기 있다. 사법시험 폐지 유예를 놓고 로스쿨생들과 사시 준비생들이 벌이는 결연하고도 필사적인 싸움. 삭발투쟁도 보인다. 사시 준비생들은 스스로를 흙수저라며 로스쿨은 금수저라 하고, 금수저로 몰린 로스쿨생들은 모르는 소리 말라며 전원 수업거부 등으로 맞서고 있다. 내년 2월에 마지막 시험을 치르면 2017년부터 사라지는 사시는 법무부가 4년 유예 방침을 정하면서 젊은이들의 싸움으로 변했다.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마지막 시험을 앞둔 사시 준비생들은 그만큼 절박할 것이고, 로스쿨 학비가 비싸고 로스쿨 입시가 금수저에 유리했다는 공정성 문제 등 피해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수저 논쟁을 보면서 이들은 그나마 흙수저라도 있고 그게 언젠가 금수저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이나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만원의 오후 일당을 포기하고 시위 현장에 나온 젊음은 밥 떠먹을 수저조차 없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쩌면 내년에 사시가 폐지되면 사시 준비생들도 수저가 없는, 수저의 색깔도 변화시킬 수 없는 젊음으로 내몰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을 것이다. 금수저로 몰린 로스쿨생들도 변호사가 양산되면 언젠가 금수저끼리의 경쟁에서 낙오해 흙수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정서로 미래의 경쟁자를 향해 날카로운 각을 세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 같은 젊음, 수저 색깔은 달라도 대한민국의 미래인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미래에 대해 어떤 확신이나 희망도 가지기 어려운 시점에 서 있다.
화제를 몰고 온 장하성 교수의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을 읽었다. 경제학자인 저자가 온갖 통계와 도표를 제시하고 하나하나 원인과 결과, 현재의 상태를 분석한 다음 내놓은 결론은 ‘젊은이들이여, 분노하라’이다. 그리고 ‘행동하라’이다. 기성세대는 미래세대를 위해 결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으면서 당신들의 미래는 당신들이 싸워서 만들라는 것이다. 노골적이고 적극적으로 저항을, 조직을, 정치와 선거를 통한 혁명을 만들어내라고 부추기고 있다. 좌절과 냉소로는 당신들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정규직으로 일하고 정규직으로 은퇴한 늙은 세대이고 기성세대인 나. 미래세대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나. 책을 덮으며 슬픔과 분노로 온몸이 뜨거워졌다. 12월19일 3차 민중대회 때 거리에 나가 어떤 젊음을 만나서도 분노하라고 저항하라고 싸우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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