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미국 샌버너디노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은 미국 사회의 해묵은 과제를 다시 드러냈다. 21세기 문명사회에서 한해 총기로 인한 사망자가 1만명을 넘어서는데도 미국은 여전히 총기 소유를 제대로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총기 소유 허용은 수정헌법 2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 소지 및 휴대에 관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조항이다. 애초 헌법을 기초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해 국민들의 총기 소유를 허용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1970년대 미국총기협회(NRA)가 이를 개인의 총기 소유를 강조한 것으로 재해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회원 500만명 이상을 거느린 총기협회는 미국 내 최대 로비단체로 평가받는 곳이다. 이들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지지 의원을 모으고, 총기 소유에 반대하는 의원들에 대해서는 낙선운동을 벌인다. 이들이 낙선 대상으로 지목하면 살아남을 후보가 없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래서 2012년 코네티컷주 샌디훅초등학교 총격으로 어린 생명 20명이 숨진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총기 규제 법안은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로비는 대의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측면도 있다. 의원들이 모든 유권자들의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만큼, 이익단체들이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1970~80년대 이후 로비가 만연화하면서 정치 시스템의 부패화가 심화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가 지난해 발간한 <정치질서와 정치부패>라는 책에서 미국의 정치부패 현상을 본격적인 비판의 대상으로 올린 것은 이 문제가 미국 사회의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이런 정치부패는 멀리 한반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연결고리가 군산복합체다. 미국의 경우 군은 방산업체를 지원해 군수산업을 육성하고, 방산업체는 정부와 의회에 세금과 정치자금을 제공한다. 정부는 해외시장을 개척해주는 구실도 한다. 의원들은 방산업체의 일자리를 유치하고자 후한 예산을 배정한다. 방산업체는 매해 미국 정치자금 제공 상위 로비단체 15위권에 3~4곳이 들어갈 정도로 많은 자금을 살포한다. 워싱턴 싱크탱크 국제정책센터(CIP)의 조사를 보면, 방산업체가 고용한 로비스트 수가 1천명을 넘어, 의원 1인당 로비스트가 2명꼴이다.
한국의 차기 전투기로 선정된 록히드마틴의 F-35의 경우가 그 실태를 잘 드러내준다.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있는 F-35 조립공장은 아예 미국 공군기지 안에 있다. 규모가 307만㎡에 이르는 이곳은 소유자는 미 국방부이지만, 운영은 이 업체가 맡고 있다. ‘군-산 일체화’를 상징하는 듯하다. 의회에는 ‘F-35 코커스’라는 의원 모임까지 구성돼 있다.
한국형 전투기(KF-X) 핵심 기술 4건의 이전 거부 문제와 관련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 10월 미국 국방부에 재고 요청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미국의 이런 시스템을 조금이나마 아는 이라면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더구나 미 방산업체는 한국의 방산업체들을 잠재적 경쟁자로 여기는 상황이다.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인 21개 기술항목에 대해서도 미국 쪽은 세부항목을 논의하자며 이전 항목을 줄이거나 질질 끌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갈수록 지난해 F-35 구매와 절충교역 협상이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허술하게 됐는지 의혹이 더 커진다.
박현 국제에디터 hyun21@hani.co.kr
박현 국제에디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