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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전후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 야마구치 지로

등록 2015-12-13 18:54

전후 70년의 마지막 글이기 때문에 올해를 돌아보려 한다. 올해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뼈대로 한) 안보법제의 성립이라는 평화 국가의 노선으로부터의 큰 전환이 이뤄졌다. 정치학의 세계에서도 마쓰시타 게이이치, 시노하라 하지메 등 1920년대에 태어나 청년 시절에 전쟁을 경험하고, 이를 토대로 연구를 심화해갔던 학자들이 하나둘 숨을 거뒀다. 이런 학자들은 패전 후 점령군에 의해 주어진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이념이나 정신으로, 때론 실천이나 행동으로 일본에 정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오랜 기간 사색과 발언을 이어갔다.

특히, 이 둘에게 공통되는 것은 정치를 논할 때 장기간에 걸친 시간의 축을 두는 점과 일관된 낙관주의를 보인다는 점이다. 마쓰시타는 50년 전부터 정보공개와 참여에 기초한 분권과 자치를 꾸준히 주장해 왔다. 오키나와현의 반대에도 헤노코의 신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중앙정부의 자세를 보면, 지방분권이라는 것은 한낱 꿈처럼 부질없는 것이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이 이렇게까지 싸우고, 재판을 통해 국가의 비위를 규탄하게 된 것은 20년 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사태다. 분권은 역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현재 아베 정치의 전성기만을 보고 있으면, 2009년의 정권교체 등은 아주 먼 옛날 얘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자민당 일당지배로부터 벗어나는 일본 정치 민주화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6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부터 다시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솟아오른다. 실제, 자민당의 열화(劣化·질적 하락)는 분명해 보인다. 정권의 이해를 생각한다면 자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엉망진창인 것을 하고 있다. 오키나와의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밀어붙여 오키나와의 민의를 짓밟고 있는 것, 역사인식에 관해 세계에선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수정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 등을 그 현상이라 부를 수 있다. 중국의 신청에 의해 난징학살에 관한 자료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에 항의하기 위해 외무성이 난징학살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우파 학자를 국제회의에 내보내는 사례는 엘리트 사이에 반지성주의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천문학회에 천동설을 주장하는 가톨릭 사제를 파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본의 보수정치에서 우익 세력은 강고하다. 2000년대 이후 민주당의 대두에 대항하기 위해 우파적 내셔널리즘이 풀뿌리 수준에서 조직화를 진행해 지금 결실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 이데올로기가 일반 국민에게까지 침투돼 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9월 안보법제 강행처리 이후 급락했던)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는 어느 정도 회복돼 있다. 그러나 원전 재가동, 안보법제, 아베노믹스의 효과 등 개별 정책과제에 관한 의견을 물으면 다수의 국민이 아베 정권이 밀어붙이는 노선에 반대하고 있음을 각종 여론조사는 보여준다. 특히, 안보법제에 대해 정치에 관심을 갖는 시민층으로부터 강한 반대운동이 출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베류의 ‘전후 레짐’ 타파에 대한 저항이 매우 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역행을 극복하고 민주화를 다시 한번 전진시키기 위해선 내년의 참의원 선거가 매우 중요하다. 야당 연대가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참의원 선거에 돌입하면 민주당의 참패는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은 2대 정당의 한 축이라는 지위를 잃고, 자민당 일당 우위체제는 결정적으로 부활한다. 그렇게 되면 역행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뿐더러, (민주화로의) 이행 자체가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참의원 선거는 지방의 ‘1인 선거구’의 승패에 따라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당이 후보 단일화를 통해) 1인 선거구에서 호각의 싸움을 하지 못한다면, 자민당의 압승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주당이 야당 결집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아베 정치에 불안함을 느끼는 국민들에게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민주당의 명운뿐 아니라 일본의 다원적 민주정치의 가능성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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