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눈을 다친 환자가 있습니다. 급히 건너편 파이낸스센터로 와주세요.”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물대포에 맞아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친 시위자를 돌보고 있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어 보여 스프레이 파스로 통증만 달래주고 일어섰다. 물대포와 시위대 사이를 뚫고 본진이 있는 곳으로 가니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화단에 누워 있다.
“물대포에 얼굴을 바로 맞았는데 오른쪽 눈이 안 보인다고 하네요.”
왼쪽 눈을 가리고 손가락을 펴서 몇 개인지 물었으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결막은 붉게 충혈되어 있고 각막은 부어 보였다. 좀더 자세히 살피니 각막과 홍채 사이 이른바 전방(anterior chamber)이라는 곳에 피가 쌓였다. 외상성 전방출혈이다. 피가 잘 흡수되고 다른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자칫 녹내장이 발생할 수 있다. 높은 수압에 의해 망막이나 시신경이 손상되었다면 실명의 위험도 있는 상태였다.
물대포(water cannon)는 1930년대 나치 독일 치하에서 처음 도입되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물대포로 인한 여러 부상 사례들이 발표되었다. 눈 손상에 대한 보고들은 대표적인 학술지 검색 사이트인 펍메드(pub med)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수압이 물대포의 3분의 2 정도인 소방 호스 물에 두 눈을 다친 사례, 스프링클러 물줄기에 손상된 사례 등이 소개되고 있다. 물대포에 의한 눈 손상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독일인 디트리히 바그너씨의 경우이다. 201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시위를 하던 그는 물대포에 양쪽 눈을 모두 다쳐 시력의 대부분을 잃었다. 바그너씨는 지난해 영국을 방문해 물대포의 위험성을 알렸고, 올여름 영국 내무부 장관은 물대포 사용을 요청한 런던시장에게 사용 불허 방침을 통보했다. 척추 손상, 뇌 손상, 안구 손상 등의 의학적 위험이 있다는 것과 ‘시민의 동의에 기반한다’는 영국 경찰의 정당성에 위배된다는 이유였다.
11월14일에 사용된 시위 진압용 물대포에는 인공 캡사이신으로 알려진 파바(PAVA)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파바는 인체에 독성을 가진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세계의사회는 지난 10월 러시아에서 열린 총회에서 사용 자제를 권고하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에서도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이 물대포와 시위 진압용 물질의 유해성을 발표한 바 있다.
불행하게도 가톨릭농민회 소속 농민 한 분이 물대포에 맞아 발생한 외상성 뇌출혈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알고 보니 그분은 내가 의과대학 시절 활동했던 동아리의 선배들이 90년대 후반 진료봉사를 갔던 마을의 이장이셨다고 한다. 동아리 선후배들이 회복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하지만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사경을 헤매고 계신다.
눈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라고 한다. 독일인 바그너씨는 그 눈을 잃었고 한국인 백남기씨는 그 눈 신경이 연결된 뇌를 다쳤다. 대한민국에서 영국과 같은 관료를 보기는 요원한 기대일까? 독일인 바그너씨의 부상은 멀리 영국에까지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한국인 백남기씨의 부상은 한국 안에서도 점점 잊혀져가는 듯하다. 생명을 위협하는 물대포의 사용 제한에 관한 규정보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복면금지법이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시급한 사안인 양 정부와 집권 여당은 몰아가고 있다.
안과 의사의 눈에 비친 요즘 세상은 피가 나서 전방출혈이 발생한 그날 시위자의 시야처럼 뿌옇고 희미하기만 하다.
조수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 안과 전문의
조수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 안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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