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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청년기획’을 말리던 선생님께 / 김영희

등록 2016-01-24 19:01수정 2016-02-04 15:08

“청년기획 하지 말아요.”

<한겨레>의 새해 기획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조언을 듣기 위해 담당 기자들과 함께 만난 어느 교수는 몇번이나 단호히 말했다. 심지어 기획을 맡은 젊은 기자들 가운데서도 “청년, 청년 이야기하는 게 정말 싫어요”라는 말이 나왔다. ‘할 얘기는 다 나오지 않았느냐’는 뜻이었을 게다. ‘그동안 그렇게 청년을 떠들었는데 뭐가 달라졌느냐’는 뜻도 담겨 있었다.

사실 ‘헬조선’이란 단어로 정점을 찍은 듯 보이는 청년 담론에 무엇을 더 보탠다는 게 가능할까 하는 우려는 컸다. 그럼에도 우리 시대를 짓누르는 가장 큰 문제로부터 눈을 돌릴 수 없다는 의무감은 청년의 삶을 다시 한번 깊이 바라보게 했다.

이 작업은 독자 이전에 나 자신에게 적잖은 울림과 깨달음을 가져다줬다. 지혜씨와 정환씨, 다훈씨, 정애씨 등 기자들이 만난 청년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매번 찬물을 머리에 끼얹은 기분이 됐다. 그동안 청년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갖가지 통계수치나 청년들의 ‘분노’를 다룬 기사를 접하면서도, 그 삶의 ‘무게’를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1살 된 아들을 두고 있어 더 절실히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청년들은 출발부터 ‘빚’이라는 쇳덩이를 발목에 차고 시작한다. 대학 문을 나서는 순간 학자금 대출 상환이 기다리고 있다. 예전처럼 번듯한 일자리가 있다면 그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일상화된 비정규직의 150만원 안팎 월급에서 20만원 안팎의 상환금은 상당한 부담이다.

집 문제는 가장 큰 문제다. 월세 등 주거비 부담이 소득의 30%를 훌쩍 넘는 청년들도 부지기수다. 전세는 씨가 마른 지 오래인데다, 설령 있다 해도 든든한 부모를 둔 ‘금수저’가 아니면 그만한 목돈을 모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시리즈 3회에 등장한 한아름씨는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싶어도 당장 다음달 월세를 생각하면 그만둘 수가 없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이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취업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대출을 끼고 전세나 내집을 마련한 뒤 빚을 갚아나가는 게 자연스러웠던 내 젊은 시절과는 판이하다.

이런 청년 문제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까. 시리즈 6회에서 다룬 ‘일본편’은 우리의 불안한 미래를 잘 보여준다. 일본에선 1990년대 후반 ‘취직 빙하기’가 도래하면서 니트, 프리터 등이 급증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청년무업자’ ‘무업사회’라는 단어들이 주목받는다. 니트나 프리터가 ‘게으른 청년’ ‘자기가 좋아서 한 선택’ 같은 자기책임론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무업자는 한번 일자리에서 이탈하면 다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계속 추락하게 되는 구조를 드러내는 개념이다.

20대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이 30, 40대엔 ‘정상 궤도’에 들어설 가능성이 있을까. 청년취업 지원을 하는 비영리단체 소다테아게넷 대표 구도 게이는 <무업사회>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한번 직장을 그만둔 뒤 어쩌다 3년 정도가 지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며 “최근엔 점점 무업자의 연령도 고령화되어 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김영희 사회 에디터
김영희 사회 에디터
일본 후생성은 청년 1명을 25살부터 무업 상태로 방치할 경우 1인당 1억5천만엔(약 15억원) 정도의 사회보장비가 더 들 것이라고 추산한다. 지금 당장 청년 지원에 돈이 들어가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더 효과적인 투자라는 것이다. 청년 문제가 청년들, 청년기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인 이유다.

김영희 사회 에디터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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