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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응답하라 2016’

등록 2016-02-02 19:01수정 2018-05-11 15:22

궁금해졌다. 28년 전을 그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인기를 끌었다. 28년 뒤인 2044년에 2016년을 그린 드라마가 나온다면 2016년의 젊음과 사랑과 일과 꿈과 가족을 어떻게 그릴까. 쌍문동쯤에서 이야기가 시작될까. 편의점에서 ‘혼밥’을 사 먹는 젊음들로 시작될까. <응팔>의 주인공들은 28년 뒤 어떤 모습일까. 그들도 70대가 될 터인데 어떻게 늙어갈까. 그들의 자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

28년이면 강산이 세 번 변할 세월이다. 우리의 일상은 외형적으로 참 많이 변한 것이 틀림없지만 내면적으로는 28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한 게 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1988도 또 그 28년 전인 1960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이란 영화를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4·19가 났다. ‘독립운동의 화신’ 85살의 ‘고마우신 우리 대통령’이 이상한 한국어로 방송을 하고 하와이로 망명했다.

1987년 6·29를 거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36%, 김영삼 28%, 김대중 27%의 표가 나와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다. 선거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선거를 통해 무엇인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해이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한판의 승부가 아니’라며 <한겨레신문>도 탄생했다. 정권교체와 또다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경험도 했다.

정작 가장 걱정되고 궁금한 28년 뒤, 2044년을 나는 볼 수 없다. <응팔>의 부모들처럼 나도 이미 죽었을 테니까.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2044년이다.

2044년. 그때도 분단체제일까. 분단 100년을 맞게 되는 것일까. 북은 핵을, 남은 사드를 장착하고 6자회담 4자회담을 놓고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좌우되는 게 여전할까. 무겁고 무섭다. 답이 없다. 답은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데도. 분단 고착이 북에 이익일까 남에 이익일까. 주변국들의 필요가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데도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기존 권력체제 유지를 일관되게 최고의 가치로 삼고만 있을까.

2044년. 2030년부터 인구가 줄기 시작해 2040년대 들어서면 우리 사회는 초고령사회가 되어 인구의 3분의 1이 노인인구다. 지금은 노동가능인구 6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하는 구조이지만 그때가 되면 두 명이 한 명을 부양해야 한다.

그 두 명은 지금 3포세대 심지어 9포세대라 지칭되며 일자리 결혼 출산 주거가 막막한, 희망이 없는 세대들이다. 자기 앞가림도 어려운 그들이 초고령 노인들을 먹여살려야 한다. ‘응팔세대’들이 손자를 품에 안는 것은 희귀한 경험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들아 미안하다’ 하고 일찍일찍 세상을 떠나주는 게 희망 없는 세대를 키우고 손놓고 바라만 본 세대들이 아들 세대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고 바람직한 노인상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총선을 앞두고 ‘의리와 뚝심의 경상도 사나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정말 쌍팔년도 구호가 난무한다. 쌍팔년이란 1988이 아니고 단기로 생년월일을 표기하던 시절에 나온 말로 단기 4288년, 그러니까 1955년도 이야기다. 조폭영화 찍는 것도 아닌데 그런 구호가 먹혔고, 먹힌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한민국이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증거다. 비박 친박 진박 영남 호남 대구 부산 목포 타령 하는 게 2016년에도 여전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새 생명은 태어나지 않은 채로 노인인구만 늘어나 그들이 선거에서 이익집단처럼 표를 행사하고 분단백년을 맞게 하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2016년은 응답해야 한다. 28년 뒤, 2016년을 추억의 드라마로 불러내기 위해선. 1988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응답하라고 말하고 싶은, 인생에서 추억의 드라마로 간직하고 싶은 해였을 것이다. 지금 이 상태의 2016년이라면 28년 뒤인 2044년의 ‘응답하라 2016’은 괴기공포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해가 될지도 모른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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