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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미용사들이 뿔났다 / 안재승

등록 2016-02-21 19:25수정 2016-02-21 21:25

#1.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더 이상 억울한 일을 당하는 중소기업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대자본에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보호 대책을 세워서 실천하겠습니다.”(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2012년 11월18일 ‘국민 행복 10대 공약’ 중)

동네 빵집과 슈퍼에 이어 이번엔 미용실이 위협받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의 미용업 진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최근 정부는 충북 오송산업단지에 ‘화장품 규제 프리존’을 만들어 법인도 미용실을 열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지금은 미용사 자격증을 가진 개인만이 미용실을 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기업형 미용실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새로운 수출 주력 상품으로 떠오른 화장품과 미용업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보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쉽게 말하면, 아모레퍼시픽이나 엘지(LG)생활건강이 미용실을 열어 커트나 파마, 피부관리 같은 미용 영업을 하는 동시에 자사 화장품도 판매하게 되는 것이다. 또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미용 관광’ 상품으로 확장해 중국인 관광객을 유인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특별법을 4월 총선 뒤 열리는 6월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 소식에 미용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지금도 공급 과잉으로 어려운데, 대기업까지 들어오면 기존 미용실들은 줄줄이 폐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미용실은 피부관리실과 네일샵을 포함해 12만여곳 되며, 이 중 95%가 여성 1인이 운영하는 영세 업소다. 지금도 경쟁이 치열해 3년 이내 폐업률이 33%에 이른다고 한다.

미용업계는 정부가 주장하는 효과에 대해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미용업과 화장품 산업의 시너지 효과를 얘기하는데, 이는 미용업의 미 자도 모르는 소리라고 한다. 미용실에서 사용하거나 판매하는 화장품은 일반 화장품과 다를 뿐 아니라 미용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하다고 한다. 또 중국인 관광객 흡수를 내세우는데, 성형수술이면 몰라도 어느 관광객이 커트나 파마를 하러 오송까지 오겠느냐고 반문한다. 탁상행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규제 프리존에서만 허용하기 때문에 기존 미용실에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설명에 대해서도,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볼 때 믿을 수 없다고 반박한다. 처음에는 특정 지역에 국한됐던 규제 완화가 전국으로 확산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미용업계는 이명박 정부 때 추진됐다가 무산된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데 대해 격앙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년 미용실과 안경점 등 11개 사업 분야에 대해 법인도 영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놨다가 ‘영세 상인 죽이기’라는 거센 비판을 받고 없던 일로 했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는 “이처럼 생존권이 걸린 문제를 정책으로 만들어 언론에 발표하면서도 이해 당사자인 미용인단체나 미용인들과 정책간담회 한번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25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3년째 되는 날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은 어느 후보보다도 경제민주화 공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실제로 당선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대통령의 입과 정부 정책에서 경제민주화는 사라져버렸다. ‘배신의 정치’가 아닐 수 없다.

안재승 경제 에디터
안재승 경제 에디터
#2.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을 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박근혜 대통령, 2015년 6월25일 국무회의 발언 중)

안재승 경제 에디터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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