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단에 나온 초기부터 아버지의 험난한 생애를 유추하며 당신의 곡진한 삶을 다루어보겠다고 애면글면 애써온 셈이었다. 한마디로 아버지야말로 내 문학의 풀리지 않는 화두였다.”
원로 작가 김원일(74)의 소설집 <비단길>(문학과지성사)에 실린 단편 ‘아버지의 나라’에 나오는 대목이다. 소설이라고는 해도 작가 김원일과 그의 문학세계에 관한 사실적이며 객관적인 진술로 손색이 없다. 2013년에 낸 자전적 장편 <아들의 아버지>에 상세하지만, 작가의 아버지 김종표(1914~1976)는 전쟁을 전후해 남로당 간부로 활동하다가 서울에서 퇴각하는 인민군을 따라 월북한 뒤 소식이 끊겼다. 이 작품만이 아니라 김원일의 이전 장편 <노을> <마당 깊은 집> 등과 6·25 전쟁을 다룬 대하소설 <불의 제전>, 그리고 ‘어둠의 혼’ ‘미망’ 같은 중단편들도 아버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동기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었으니, 아버지는 작가로서 그의 필생의 화두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설집 <비단길>은 1966년 등단해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은 김원일의 여덟번째 중단편집이다. 중편 분량인 표제작과 여섯 단편이 묶였는데, 앞서 인용한 ‘아버지의 나라’를 비롯해 ‘기다린 세월’과 ‘울산댁’이 아버지에 얽힌 이야기를 거의 사실 그대로 쓴 작품들이며, 표제작과 ‘난민’에서도 작가는 약간의 변형을 거쳐 역시 아버지라는 화두와 대결을 펼친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작가인 주인공은 평양에서 열린 학술토론회에 참관자 자격으로 동행해 월북한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다. 북에서 재혼해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두었으며 1976년 동해안 요양소에서 삶을 마감했다는 정보를 북쪽 인사에게 전달하고 생전 행적과 정확한 기일 등에 관한 답변을 기다리지만 일정이 끝날 때까지 답을 듣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서고 만다.
표제작 ‘비단길’에서는 북에 생존해 있는 아버지가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해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금강산에서 무려 60년 만에 아버지와 재회한다. 늙은 어머니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어느 날 문득 소식을 전해 오고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자 흥분과 설렘으로 잠을 설치며 상봉 날짜를 기다린다. 그러나 막상 금강산에서 이틀 동안 남편을 대면하면서는 평생 쌓인 원망과 한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다가 모든 상봉 일정이 끝나고 다시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에야 차창 밖 남편을 향해 소리친다. “여보, 날 거기로 데려가주이소. 여생을 당신과 함께, 조석으로 따뜻한 밥 대접하며 보내고 싶심더. 제발 날 거기로 데려가주이소!”
‘비단길’은 끝내 재회하지 못하고 만 부모님을 대신한 자식의 해원굿처럼 읽힌다. ‘아버지의 나라’도 그렇고 ‘비단길’도 그렇고 지극히 담담하고 건조하게 사태의 진행을 시간순으로 전하는 작가의 필치가 냉정해서 오히려 아프다. 다른 한편으로는 2000년을 전후한 가까운 과거 어느 한때 남한 주민이 평양을 방문하고 금강산에서 상봉한 남북의 가족이 평화롭게 삼일포 호수로 소풍을 가는 모습이 비현실적인 꿈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기다린 세월’과 ‘울산댁’이 자전적 회고담이라면, 인천상륙작전 뒤 인민군 편이었던 남편을 찾아 자식들과 함께 북으로 피난길에 오르는 칠곡댁 이야기 ‘난민’, 그리고 책 뒤에 해설을 쓴 평론가 김병익의 전쟁통 경험을 소설로 쓴 ‘형과 함께 간 길’ 역시 넓게 보면 아버지 세대와 그 세대가 온몸으로 겪었던 6·25 전쟁을 상대로 한 작가의 문학적 고투의 결과라 하겠다. 뜻깊은 등단 50주년을 여전한 현역으로 기리는 노작가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bong@hani.co.kr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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