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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디어 전망대] 필리버스터를 대하는 상반된 태도 / 황용석

등록 2016-02-29 20:21

테러방지법 상정에 반발해 야당이 본회의장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진행하면서, 한국 정치가 생소한 경험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3년부터 국회법에 의원의 발언시간 제한 규정을 두었다가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이 제정되면서 무제한 토론이 다시 가능하게 되었다. 사실 이 제도는 필리버스터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위헌 논쟁이 이어질 만큼 뜨거운 감자다. 미국의 경우, 양극화된 의회정치 과정에서 소수의견에 대한 배려, 정파 간 타협의 유도, 의안의 충실한 유도라는 긍정적인 해석이 있는 반면, 전략적 방해행동으로 인해 입법교착의 개연성이 크고 의원의 정치선정주의 행위로 양당 대립을 심화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만큼, 필리버스터는 다양한 영화와 정치드라마의 소재였다. 대표적으로 미국 영화문화재에 선정된 영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1939)에서 주인공 스미스가 추경법안을 막기 위해 23시간16분의 필리버스터를 하는 장면이 유명하다.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필리버스터 역시 미디어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인터넷으로 공중에게 토론내용을 직접 전달하는 채널이 생기면서 입법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토론에 참여한 의원의 이름이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르는가 하면, 국회방송을 생중계하는 인터넷 티브이 사이트의 트래픽이 급증하고, 누리꾼들이 방송을 시청하면서 실시간 토론을 벌이는 등 정치적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필리버스터가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정치효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언론은 이 새로운 정치경험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그 가운데 이 행위를 반의회주의적 입법방해와 의원 선정주의로 바라보는 시각과, 누가 더 오랫동안 토론을 이끌었는지 기록경신에 주목하는 경마식 보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필리버스터가 입법 관행인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여-야 합의에 의해 마련된 합법적인 의회 절차라는 점에서, 전자의 보도 시각은 제도로서 필리버스터를 오인시킨다. 또한 토론자의 기록경신을 과도하게 부각하는 보도는 자칫 필리버스터 제도 도입의 취지를 오인시킬 수 있다. 토론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 토론되는가이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 보도는 토론 내용보다는 졸고 있는 의원들과 허리를 짚고 토론하는 의원의 모습 등 토론의 부수현상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제도가 효용성을 갖기 위해서는 토론자로 나서는 의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의원들이 채워야 할 것은 시간이 아니라 내용 있는 정치 수사다. 현재 미국 대선에 나선 두 경선후보가 과거 필리버스터로 주목을 끌었지만, 전혀 상반된 평가를 받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공화당의 경선후보인 테드 크루즈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개혁정책안(오바마케어) 예산안을 막기 위해 2013년에 무려 21시간에 이르는 필리버스터링으로 당시 구글 인기검색어 1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토론은 동화책을 읽거나 의미 없는 자기생활을 늘어놓는 등 시간을 끄는 데만 집착해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반면, 민주당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의원은 부시 정부의 부자감세정책을 막기 위해 2010년 12월10일 8시간37분 동안 토론했고, 언론은 그에게 ‘필리버니’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지금 미국에서 누가 어떤 지지를 받고 있는지는 독자들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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