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펼칠 반상의 대결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인간 대 컴퓨터 간 ‘세기의 대결’이란 의미가 붙고, 알파고는 바둑 판세와 수 읽기에 뛰어난 ‘컴퓨터계 끝판왕’으로도 불린다. 인간 고수와 벌인 대결로 주목받은 컴퓨터로는, 1997년 체스 게임을 이긴 아이비엠(IBM) 딥블루, 2011년 퀴즈쇼에서 우승한 아이비엠 왓슨에 이어 구글 알파고가 세 번째다. 9~15일 서울에서 치러지는 5번기 이후 나올 ‘인공지능, 아직 한 수 아래’, ‘인간, 인공지능에 패하다’ 같은 성적을 두고서 벌써 엇갈린 전망이 쏟아진다.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을 다루는 많은 뉴스와 이야기에선 놀라움과 두려움을 쉽게 볼 수 있다. 인간의 정신·육체 노동을 대신할 만한 소프트웨어와 로봇의 개발 소식이 전해지는 요즘, 인공지능의 약진이 이에 더해져 미래 사회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를 생각하면 놀라움과 두려움은 뒤섞인다. “로봇이 일을 다 하면 나는 커서 뭐 해?”라며 벌써 일자리 걱정을 하는 초등생 딸아이의 고민이 사뭇 진지하게 들린다.
알파고의 등장은 인공지능 역사에서 얼마나 큰 사건일까? 컴퓨터과학 분야 연구자들의 글과 얘기를 보면, 알파고는 인공지능 연구의 중요한 변화 흐름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읽힐 만하다. 하지만 더 나아가 이번 대국이 인간 지능의 보루인 바둑을 두고서 인간 대 기계의 지능을 겨루는 결정적인 한판 승부라는 식으로 바라보면 곤란하다는 신중론도 꽤 있다.
많은 연구자가 닦아온 인공지능 연구엔 몇 갈래가 있다. 미리 정해진 범위 안에서 특정 문제를 푸는 실용적인 ‘약한 인공지능’ 연구가 있다면, 지각·추상·추론·판단을 종합해 지능 전반을 다루는 ‘강한 인공지능’ 연구도 있다. 이런 갈래에서 보면 알파고는 약한 인공지능의 발전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임이 분명하다. 1960년대의 야심찬 예측인 강한 인공지능은 여전히 요원한 꿈으로 남아 있다.
알파고는 약한 인공지능조차 세련되게 구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다. 사실, 인공지능 연구는 지난 수십년 동안 몇 차례 부침을 겪었다.(유신 지음, <인공지능은 뇌를 닮아 가는가>) 컴퓨터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뇌 닮은 인공지능이 곧 만들어지리라는 자신감이 컸던 1960~70년대 전성기도 있었고, 어떤 기능에 집중한 ‘전문가 시스템’ 인공지능이 융성했던 1980년대 부흥기도 있었다. 물론 암흑기도 거쳤다. 지금 인공지능은 컴퓨터과학과 신경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세 번째 전성기를 맞은 셈이다.
알파고는 긴 역사의 성과를 최고의 사양으로 갖추고서 등장했다. 매우 빠른 연산의 하드웨어와 병렬처리 컴퓨팅, 스스로 학습하며 진화하는 확률적 연산 알고리즘, 인공신경망의 새 기법, 인공지능 훈련에 쓰인 방대한 기보 데이터베이스 등이 강한 알파고를 만든 구성물이다. 더 강한 하드웨어, 알고리즘, 데이터베이스는 계속 등장할 테니 알파고와 그 후세대의 약한 인공지능은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의 길이 평탄하지는 않다. 예컨대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많은 캐릭터와 상황이 등장하는 비디오 게임에서 10대 소년을 능가할 인공지능의 개발은 더 어려운 또 다른 과제가 될 것이란 전망도 전한다.
바둑 대결 이벤트의 이면에선 구글 기업이 눈에 띈다. 인간유전체, 양자컴퓨터, 로봇 등 분야에서 굵직한 뉴스의 주인공이 된 세계기업 구글이 만들어내는 ‘미래 신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약한 인공지능의 강한 도전과 겹쳐 구글의 신세계가 더욱 궁금해진다.
오철우 삶과행복팀 기자 cheolwoo@hani.co.kr
오철우 삶과행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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