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와 도널드 트럼프의 두각으로 양당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갈 것 같다. 한마디로 샌더스는 민주당에 지지층을 더하고 있고, 트럼프는 공화당 지지층을 분열시키고 있다. 모두 양당에서 비주류이거나 이방인인 두 사람이 양당에 상반되는 효과를 자아내는 것은 양당이 걸어온 궤적 때문이다. 미국 보수운동 세력들은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 경제의 침체에 따른 중산층 붕괴 현상 속에서 소외되던 백인 중하류 계층을 사회적 보수주의로 자극해 견인해왔다. 범죄, 동성결혼, 총기 소유 등을 계속 쟁점화해 보수적 성향의 백인 중하류층의 정서를 자극했다. 상류층의 이해인 감세와 복지 삭감은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한 몫 찾기’로 포장했다. 증세와 복지는 이민자, 소수 인종,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 결과 공화당은 상위 1%와 백인 중하류층의 정당으로 변해갔다. 잠재적 지지층이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지지층의 결속력은 커졌다. 지지층 결속은 의회 선거에서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공화당이 다수당으로 올라선 배경이다.
공화당의 이런 전략은 미국에서 늘어나는 비백인 유권자와 이민자들로 인해 한계에 봉착했다. 미국의 비히스패닉계 백인은 2012년 현재 인구의 63%이지만, 2043년이 되면 과반에 못 미치게 된다. 공화당의 진짜 주인들인 자본가 계층 입장에서 이민자는 풍부한 노동력과 당세 확장의 원천이다. 결국, 공화당 안팎의 주류들은 2013년 가을 이민개혁법을 합의해 이민자와 소수인종에 구애를 보냈다. 이는 그동안 공화당에 의해 끊임없이 보수화로 추동된 백인 중하류층의 이반만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 틈새를 파고든 것이 트럼프다. 그가 이민 반대를 선거 메시지의 중추로 놓고, 그동안 공화당이 자극한 사회적 보수주의를 더욱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다. 공화당의 보수화 전략에 길들여진 백인 중하류층은 열광했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은 공화당의 자업자득이다.
반면 민주당은 잠재적 지지층은 늘어나나, 지지층 결속력 약화라는 문제를 두고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민주당은 2005년 전국위 의장에 취임한 하워드 딘이 주도한 ‘50개주 전략’ 등으로 당 밖의 잠재적 지지층을 민주당에 투표하는 유권자로 전화시키는 대장정에 들어갔다. 그 핵심은 인종과 계층을 넘어선 ‘무브온’ 등 진보적 온라인 네트워크 운동들을 민주당이 소화하는 것이었다. 또 빌 클린턴 이후의 당 중도화에 의해 소홀해진 진보적 가치에 대한 반응성을 높여 나갔다. 무소속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에 출마할 수 있었던 것은 하워드 딘 이후 추진된 민주당의 개방성이 있어서 가능했다. 무브온 등 진보적 단체들의 지지자들이 민주당 경선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샌더스 등장 이후 공약을 왼쪽으로 이동시킨 것도 당의 개방성과 반응성을 말해준다.
공화당은 최대 강점인 지지층 결속력이 무너졌다. 당 유력 인사들이 공화당 후보 트럼프에게 결코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의회 선거에 나서는 의원들에게 트럼프와의 연관성을 부정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인종과 계층에 기반한 티파티 운동은 공화당의 폐쇄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반면, 민주당에서 후보가 유력한 클린턴은 샌더스의 지지자 대부분을 자신의 표로 확장할 입지에 서 있다.
이건 결국 정당의 개방성과 폐쇄성의 문제다. 현재 한국 정당에서 샌더스와 트럼프는 없는가? 트럼프는 있지만, 샌더스는 없다. 야권 내부에서는 ‘호남’을 부르짖으며 그동안 시도했던 지역주의 타파와 온라인 정당화 등 정당 개방화를 모두 원점으로 돌리고 있다. 여권에서는 ‘진박 타령’을 하며 당 안팎의 온건 보수주의 세력을 무력화하고 있다. 양당의 전통적 기득권자들은 당의 개방성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에게 트럼프는 가까이 있지만, 샌더스는 아직 멀리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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