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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단어와 단어 사이

등록 2016-04-26 21:16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그녀>(Her)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다. 결말에서 인공지능인 ‘사만다’는 주인공을 떠나며 말한다. “이건 책을 읽는 것과 같아요. 내가 깊이 사랑하는 책이죠. 난 그 책을 아주 천천히 읽어요. 단어와 단어 사이가 멀어져서 그 공간이 무한에 가까운 상태예요. 당신을 원하는 만큼 나는 당신의 책 안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요.” 그녀는 알파고만큼 성장해서 그를 사랑하는 단계를 넘어서 버렸다. 당신이 책이라면 나는 당신을 이루는 문장 사이, 단어 사이에 있어요. 당신을 속속들이 읽고 또 읽어서 나는 그 사이의 무한한 공간 속에, 사랑 속에 있어요. 그런데 내 사랑이 무한히 커져서, 이제는 당신이라는 책 안에 갇혀 있지 않아요. 이것은 단순한 결별이 아니다. 깊이 사랑할 때, 바로 그 사람에게 빠져 있을 때, 우리는 개별자의 한계를 벗어난다. 사만다는 동시에 여러 명을 사랑하면서도 주인공을 사랑한다. 사랑에 빠진 이들만이 이 역설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문인들이 진행하는 304낭독회가 20회를 맞았다. 304회까지 이어가겠다고 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다시는 몸으로는 만날 수 없는 이들의 사랑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사랑한다고 고백하자, 사만다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이곳으로 온다면, 날 찾아와요. 그러면 아무것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할 거예요.”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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