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호 경제부 기자
아침햇발
“클린턴의 대한반도 정책에 대해 영어로(in English) 말하시오.”
한 방송사 기자직 면접시험장. ‘잉글리시’와는 전혀 안 어울릴 듯한 늙수그레한 면접관이 영어를 내뱉는다. 눈앞이 하얬다. 질문을 알아들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첫눈에 반한 사람을 보면 귓가에 종소리가 울린다더니만, 난 그날 ‘뎅그렁, 뎅그렁’하는 또다른 종소리를 들었다. ‘종 쳤구나!’하는.
오늘 <한겨레>에 신입사원 합격자 명단이 실렸다. 지난 16~17일, 실무 면접관으로 이들, 그리고 명단 바깥의 더 많은 이들과 함께했다. 2003년에 이어 두번째다. 2년 전에도 그랬지만, 아등바등하는 ‘시퍼렇게 젊은 청춘들’을 보며 가슴 저렸다. 그들은 오래전 내 모습이기도 했다.
1년8개월 가량의 언론사 수험기간을 들추자니 먼저 창피스런 생각부터 인다. “상처는 아물어도 자국은 남는다”(영화 ‘눈물’의 대사)는 말처럼 아직도 백수 시절의 기억들은 날 아프고 부끄럽게 한다. 언론사 준비를 시작할 무렵, 우리 과에는 두 스터디 팀이 있었는데, 난 ‘마이너’ 소속이었다. 처음 치른 언론사 시험에서 금융용어인 ‘꺾기’를 “누르기, 조르기와 함께 유도의 3대 기술”이라고 답안에 쓸 정도로 ‘깡통’이었다. ‘견딜 수 없는’ 몇몇 언론사만 제외하곤 마구잡이로 시험을 봤다. 참 많이도 떨어졌다. 한 언론사에만 세 번째 시험을 치른 적도 있었다.
늘 불안했다.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다”는 식의, ‘어떻게 하다보니’, ‘달리 할 게 없어서’(‘나는 머리가 좋다’와 동의어)처럼 여유롭게 입문하고 싶었지만, 못 그랬다. 헤이즐넛처럼 ‘쿨~’하고 싶었지만, 삶은 텁텁하고 끈적끈적한 ‘옛날식 다방 커피’일 뿐이었다. 떨어질 때마다 살점이 툭툭 떨어져나가는 통증, 그리고 존재의 무가치함에 자학했다.
스물여섯살이던 그때, 내겐 아내와 막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아내와 약속했던 ‘1년’이 끝날 무렵, 치른 한 언론사 면접에서 또 떨어졌다. 아내는 큰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이젠 어떻게 해?”라고 물었다. 돌박이 딸아이가 ‘엄마, 아빠’를 막 할 때였다. 그만 접으려 했다. 그러나 딱히 달리 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또 8개월이 흐른 뒤, 나는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9월 말 현재 이 땅의 20대 실업자는 31만8천명이다. 고시생 등 ‘구직 단념자’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20대 인구 797만명 중 대학생 303만명을 빼면 494만명이 남는다. 10대·30대 대학생도 있겠지만, 군인을 빼면 ‘이십대 태반이 백수’(이태백)라는 말이 정말이다. 올해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익스’의 이상미(22)씨가 신데렐라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예쁘장한 얼굴이 먼저겠지만, 자신의 면접 탈락기를 노랫말로 만들어 비슷한 이들에게 큰 공감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청년 백수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윽박지르는 건 야박한 일이다. 그 발언이 결코 ‘낮은 곳’에 있지 않은 이들에게서 나오기에 더욱 그렇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워야 할 이 땅의 새파란 청춘들이 그 ‘한밑천’을 침침한 도서관에서 토익책 뒤적이는 데 다 써버리는 건 엄청난 국가적·개인적 손실이다. 나이 장벽 등으로 ‘패자 부활전’ 또한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 ‘대한민국 청년 백수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숙제다.
그런데, 2년 전 면접장에서 만났던 파란치, 마르코스, 그리고 짱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권태호/경제부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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