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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재봉의 문학으로] 맨부커상과 국립한국문학관

등록 2016-05-19 20:07수정 2016-05-20 11:35

예상 밖으로 뜨거운 반응이다. 작가 한강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에 나라 전체가 제 일처럼 기뻐한다. 수상작 <채식주의자>는 없어서 못 팔 지경으로 찾는 이가 많아졌다. 급기야 2007년에 나온 책이 뒤늦게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역주행’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한국 문학의 수준과 세계적 위상에 대한 장밋빛 수사가 난무한다. 지난해 표절 사건으로 바닥까지 추락했던 한국 문학이 불과 1년 사이에 찬란하게 부활한 형국이다.

한국 작가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상을 받은 것은 물론 축하할 만한 일이다. 수상자인 작가와 번역자에게 따뜻한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을 올림픽 같은 국가 대항 경기의 메달 획득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촌스럽다. 문학은 철저히 개인의 작업이다. 한강은 한국 문학이라는 환경 속에서 그 자양분을 흡수하며 작가로 성장했고, 그의 수상이 있기까지 한국 문학의 그동안의 축적이 바탕을 이룬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한국이나 한국 문학을 대표해서 상을 받은 것은 아니다. 한강의 수상으로 한국 문학의 수준과 위상이 갑자기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가 수상에 실패했다 해도 작가의 문학성과 한국 문학 전체의 격이 그만큼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맨부커상이나 노벨상 같은 세계적 문학상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한국 문학을 더 잘, 그리고 더 많이 번역해서 세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은 중요하고 바람직하다. 그러자면 번역과 해외 출판 지원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점검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는 자발적으로 한국 문학 번역가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다. 그러나 번역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그런 ‘인재’가 다른 걱정 없이 좋은 한국 문학 작품을 번역하고 출판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으로 한국 문학은 모처럼 사회 전체의 호의적 관심을 받고 있다. 떨어져 나갔던 독자가 돌아오고 있고, 환멸과 자괴감으로 또는 불투명한 전망 때문에 문학을 포기했던 지망생들도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보인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 사회는 중요한 문학적 결정 하나를 앞두고 있다. 다음주에 공모가 마감되는 국립한국문학관 사업이 그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사업 공모에는 20곳 가까운 전국 지자체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한국문학관은 500억 가까운 예산을 들여 2019년까지 완공하고 2020년에 개관한다는 일정이다.

지자체들마다 이런저런 근거를 들어 국립문학관을 제 지역으로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들일 테지만, 혹시라도 문학보다는 지역을 우선한 생각이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하물며 정치 논리로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면 두고두고 논란의 불씨를 남기게 될 것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결국 서울에 분관을 내야 했던 사정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국 문학의 흐름과 성과를 집대성해 보여주고 자라는 세대에게 교육의 장으로 구실하자면 상징성과 접근성 그리고 확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지금 전국에는 100개 안팎의 문학관이 있다. 지역 출신 웬만한 문인들은 제 이름을 단 문학관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이상, 박태원, 염상섭, 임화, 최남선 같은 서울 출신 문인들, 그리고 백석과 이용악처럼 해방 뒤 북에 남은 문인들은 소박한 문학관 하나도 차지하지 못했다. 국립한국문학관을 서울에 두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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