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곁에 있을 땐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일들이 아무데서나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통에 너는 엄마 소식을 들은 뒤 지금까지 어떤 생각에도 일분 이상 집중할 수 없었다. 기억 끝에 어김없이 찾아드는 후회들,….’ 신경숙 작가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칠순의 늙은 엄마가 실종된 뒤 기억을 통해 ‘엄마 박소녀’를 되짚는 가족들의 뒤늦은 후회와 가슴 치는 자책이 담겼다.
비슷한 ‘후회’와 ‘자책’을 한다. 지난 5월7일, 토요일이었다. 모처럼 어머니, 아버지와 한 밥상에 앉았다. 곧 다가올 며느리 생일을 미리 챙기겠다고, 어머니가 먼저 연락해왔다. “그런데 요즘 내가 자꾸 숟가락을 떨군다. 다리도 허공을 딛는 듯하고.” 어머니의 이 말에, 홍삼 건강식품을 챙기지 못한 게 못내 미안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노모가 몇해 전부터 땅에 눕고 싶을 만큼 피곤을 느낄 때면 나에게 하는 거의 유일한 부탁이었다. 물론, 홍삼 가격보다 많은 돈을 항상 내 손에 쥐여줬고, 씻은 듯 피곤이 가신다며 또 몇달을 활기차게 생활했다.
이틀 뒤, 어머니는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왔는데, 생각보다 안 좋단다. 야~,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 전화기 너머 아버지의 목소리는 떨렸다. 입원 뒤 많은 검사가 이뤄졌고,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이제야 암 환자나 그 가족이 많았다는 걸 깨닫는다. 회사 선배, 출입처에서 만난 기자 등 알고 지내던 여섯이 암으로 세상을 떴다. 한 후배는 일과 뒤 가끔 병실을 찾곤 했다. 아버지가 투병 중이라 했다. 대체 인력이 없는 출입처라, 밤에 병실로 향하던 그에게 기사를 고쳐쓰라 지시한 일이 생각나 마음이 불편하다.
2014년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 1위는 암이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2013년 한해 암 발생자는 22만5343명이다. 남성이 11만3744명, 여성은 11만1599명이다. 평균수명 81살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7.3%다. 평생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는 얘기다.
겪어보니 그들의 고통을 알겠다. 일단 심리적으로 버겁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에게 당부한다. “그냥 어머니에겐 큰 혹이 있다고만 해주세요.” 50대 중반 누나가 “눈치채신 듯하다”며 어머니께 병명을 말씀드리기로 했지만, 아직 입을 떼지 못했다.
가족의 삶도 영향을 받는다. 병수발에,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생업이 있는 다섯 자식들, 그 누구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 하루는 내가, 어떤 때는 남동생이…. 그마저 어려우면 팔순을 앞둔 아버지가 택시를 타고 왕복 2시간 거리를 오간다. 병상 옆 간이침대를 밤새 지키는 것도 늙은 아버지다. 일을 마친 뒤 밤늦게 병실을 찾지만 “내 평생, 이렇게 자식들을 번거롭게 할 줄은 몰랐다. 네가 집에 가는 게, 회사 일에 영향을 안 주는 게 나는 더 편하다”는 어머니에게 떼밀려 번번이 돌아온다.
암병원을 드나들 때면 눈이 벌겋게 충혈된 다른 환자의 자식들과 자주 마주친다. 그들도 비슷한 심정일 게다. 당혹, 후회, 두려움, 먹먹함…. 아버지가 암투병 중인 다른 후배는 “그래도 암은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주는 병”이라 위로한다. 치료를 잘하면 완치될 수 있고 최악의 경우라도 가까운 사람들과 정리할 기회를 주는 질병이니, 옛일을 추억하고, 미처 못다 한 고마움은 표현하고, 맺힌 감정은 풀어내며 가족과 삶의 의미를 돌아보라는 뜻일 게다. 5월이 이틀 남았다. 어머니와 얽힌 애잔한 기억을 되새김질한 한 달이었다. ‘아직 곁에 있을 때’, ‘그래도 뭔가 챙겨줄 수 있을 때’, 그때 가족이 필요하다. 조금 잔인한 가정의달을 보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신승근 라이프 에디터
신승근 라이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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