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개성공단 설비 점검 등을 위해 방북신청서를 내자 통일부는 “현 시기에선 제재가 우선”이라는 논리로 즉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아마도 통일부는 이 조처가 몇몇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만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한국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기를 바라는 많은 이들의 소망도 함께 거부한 것이다.
최근 언론은 ‘통일부의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신청 거부’ 소식과 함께 한국 경제의 불안한 장래를 경고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조선·해운업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 얘기로부터 시작해, ‘묻지마 구조조정’이 다른 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소식, 30대 대기업 그룹의 계열사 3곳 중 1곳도 사실상 ‘부실기업’이라는 보도, 그리고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소비 심리 위축 전망까지….
국내외 금융기관들의 보고서도 부정적 내용 일색이다. 한국은행은 9일 ‘불확실성 확대의 경제적 영향 분석’ 보고서를 내어 “한국 경제의 거시경제 불확실성 지수가 2003~2007년 평균 16.7에서 2010~2016년 평균 31.2로 두배 가까이 상승했다”고 밝혔다. 미국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도 최근 “한국과 세계경제와의 성장률 격차가 지난해 0.5%포인트에서 올해는 0.7%포인트, 내년에는 0.8%포인트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온통 한국 경제에 대한 ‘레드카드’다. 이제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기업인을 넘어 일반 회사원, 주부, 학생 등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확산되는 양상인 것 같다. 과연 이들은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내놓은 방북신청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개성공단이 재가동되고, 더 나아가 해주나 남포, 그리고 강원도 통천 등지에도 또다른 남북합작 공단이 선다면…. 5·24조치로 중단된 내륙지역 남북경협이 재개된다면…. 또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북을 통과해 시베리아횡단열차(TSR)로 유럽까지 갈 수 있다면…. 나선특별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북중러 3각 협력에 부산이 참여할 수 있다면….’
이런 비전은 한때 통일부가 누구보다 열정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설명해오던 것들이다. 시민들은 통일부가 제시했던 그 비전들을 다시 떠올리며 잠시나마 ‘한국 경제에 아직도 길은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민들은 바로 그 통일부가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 신청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시민들은 쫓기듯 다시 ‘레드카드가 난무하는 한국 경제의 현실’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걱정에 휩싸인다. 뭔가 그 해법이 손에 잡힐 듯했는데, 그것은 금단의 사과처럼 접근할 수가 없었다. 미래에 대한 암담함이 이전보다 한층 깊어진다.
제재란 것도 결국은 무언가 더 나은 장래를 위해 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북 제재도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은 뒤 ‘나도 잘되고 너도 잘되자’는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시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대북 제재는 ‘너(북한)만 망하게 할 수 있다면 내(남한)가 망가져도 좋다’는 식으로 느껴진다.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라는 초강경 조처는 분명 북에도 타격을 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조처는 해외 금융기관들을 포함해 많은 이들에게 우리 경제의 미래 전망을 더욱 어둡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잘못됐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의 미래비전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커질수록, 개성공단 재가동 요구 목소리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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