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처음 갔을 때, 깨달은 뻔한 사실.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다. 현실 재판은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 달랐다. 가장 달랐던 건 판사였다. 판사는 판사 역을 맡은 배우처럼 묵직하고 울림 있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조용한 법정임에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웅얼거렸다.
몇 번을 더 법정에 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판사님의 목소리는 클 필요가 없다. 작게 말해도 누구나 귀 기울였다. 그의 판결을 모두 집중해 들었다. 목소리에 권위를 실을 필요도 없다. 그의 말은 무조건 집행됐다.
동명소설을 드라마화한 <뿌리>의 백인 여주인도 그랬다. 그녀는 고상하게 말했다. “토니가 내 말을 돌봤으면 해요.” 그녀는 “당장 말을 돌보지 않는다면 너를 매질할 거야”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흑인 노예는 복종한다. 오히려 목청 높여야 하는 것은 쿤타킨테라는 흑인 노예. 토니라는 이름을 거부하고 원래 이름인 쿤타킨테를 주장하려면 악을 써야 했다. 힘을 갖지 못한 사람의 목소리는 커야 한다.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을 취재할 때, 십장쯤 되는 사람이 말했다. “차 타고 가다 보면 우리 같은 행색의 사람들이 막 큰소리로 통화하고 그러죠?” 그런다. 사람들 미간이 찌푸려지는지도 모르고, 저만 아는 ‘꼰대’처럼. 그는 말했다. “당장 사람 하나 구하냐 못 구하냐에 따라 내일 일을 갈 수 있냐 없냐가 결정되니까. 다급한 거죠. 그러니까 목소리가 커지고.” 작업자 하나 구하는 일이 세상 전부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목소리는 크다. 절박하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
절박하다고 모두 다 소리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십장이다. 인부 몇 명을 모아 팀을 만들고 자기 사람으로 부릴 정도로 힘 있는 사람이다. 그럴 힘조차 없는 사람들은 무슨 소리를 낼까. 극단적인 예로, 세계 저편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할 말이 많겠는가. 당장 필요한 것도 많고 분노도 크다. 그러나 우리가 듣는 건 굶주린 아기 울음소리뿐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타인에 의해 선별적으로 선택된다.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이들의 말 대신 한국어 내레이션이 나오는 것은 연출의 미학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한 눈망울과 마른 몸만 제공하면 된다.
앞서 <뿌리>의 쿤타킨테가 노예로 끌려온 부당함을 호소하자, 노예감독은 말한다. “시끄러운 소음으로밖에 안 들려.” 주인은 노예의 언어를 알 필요가 없다. 언어와 목소리는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주어진다. 소리를 내려는, 낼 필요가 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통제당하거나 선별적으로 선택된다. 만들어진 침묵이 있는 한 힘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는 클 필요가 없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평등, 평화, 민주적 권리를 지켜온 것은 우아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인위적인 침묵도 아니다. 침묵을 깨는 소음은 언제나 있어 왔다. 유신시절 재판장 석으로 던진 고무신 한 짝 같은, 채찍질 속에서도 쿤타킨테라 외쳐지는 이름 같은, 소음들 말이다.
지하철역 두 곳에서 일고 있는 추모와 분노는 침묵을 깨는 소음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무차별 살인이 아닌 “여성 혐오 살인”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는 목소리. 매년 2000여명이 일하다 죽어도 별일 없는 사회에서 구의역 한 청년의 산재 사망을 아파하는 목소리. 더 시끄러워도 좋겠다. 우리 사는 세상에는 소음이 필요하다.
희정 기록노동자
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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