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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벼랑 끝 보수, 희망은 있는가

등록 2016-06-20 17:46수정 2016-06-22 19:52

유승민 의원의 새누리당 복당에 친박계는 왜 이리 극렬하게 반대할까. 박근혜 대통령의 눈 밖에 난 유 의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마땅한 대선후보가 없는 친박계로서는 비박계의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유 의원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유 의원은 새누리당 개혁의 상징이다. 그는 복당 결정 뒤 “국민이 원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보수의 개혁과 당의 화합을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했다. 당의 화합이야 의례적인 말이라 치고 그가 강조하는 것은 보수의 개혁이다. 수구 성향의 새누리당을 개혁해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가능할까.

보수정당의 당내 개혁 움직임은 이전부터 있었다. 김성식, 정두언, 유승민 등이 대표적인 개혁론자들이다. 김성식은 보수 개혁의 한계를 절감하고 2011년 12월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지금은 국민의당 정책위 의장으로 평소 가슴에 품고 있던 개혁 방안을 국민의당을 통해 구현하려 하고 있다. 정두언은 20대 총선에서 낙선해 여의도를 떠났다. 유 의원이 이번에 복당함으로써 개혁론자의 명맥을 겨우 이었다.

이들이 그동안 주장해온 내용은 획기적인 것들이 많다. 정두언은 이명박 정부 시절 “보수세력은 그동안 탐욕스런 기득권 세력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만 키운 채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다”며 성장보다는 안정을 중시하는 재정금융정책, 기업보다는 서민 위주의 환율정책, 대결 일변도보다는 대화와 민간교류 확대를 지향하는 대북정책 등 보수 혁신을 줄기차게 외쳐왔다. 보수정당이 수용하기엔 쉽지 않은 정책들이었다.

유 의원의 주장은 훨씬 더 혁신적이다. 그가 생각하는 보수 개혁 방향은 지난 5월 말 성균관대에서 1시간여 동안 한 강연에 압축돼 있다. 그는 한국 경제의 생태계가 기득권 강화·유지를 위한 반경쟁적, 반시장적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이를 평평한 운동장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재벌 대기업의 독점력 남용, 불공정 행위와 재벌 총수의 사익 편취를 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극화, 불평등, 불공정 해소 없이는 공동체가 내부에서 무너질 것이라며 총체적인 국가 개혁을 역설했다.

민주주의를 넘어 공화주의를 거론한 점도 눈에 띈다. 헌법 제1조에 있는 ‘민주공화국’ 중 국민이 민주의 개념에만 관심을 가질 뿐 공화주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우리 시대가 처한 불평등, 양극화 등을 해결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게 공화주의라고 지적했다. 왕이나 군주의 지배를 받지 않는 평등한 시민이 모인 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키려면 공화주의를 추구하는 쪽으로 보수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창당한 공화당을 언급하면서는 ‘박 전 대통령이 일으킨 1961년 5·16 쿠데타’라고 분명하게 말하기도 했다.

내용만 놓고 보면 진보 쪽 주장에 훨씬 더 가깝다. 현재의 새누리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다. 하지만 유 의원은 복당 일성으로 ‘보수의 개혁’을 천명한 만큼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내용의 개혁을 추진하려 할 것이다. 새누리당 내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겉으론 계파 갈등으로 비치고 있지만 유 의원과 친박 사이에는 이런 본질적인 노선 갈등이 깔려 있다.

유 의원의 보수 개혁이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 사회의 주류임을 자처하는 보수세력이 변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이 바뀌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보가 아무리 세상을 바꾸려 해도 보수가 변하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싫든 좋든 이런 현실은 인정해야 한다.
정석구 편집인
정석구 편집인

새누리당도 유 의원 복당을 계기로 진정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혁신 경쟁을 벌여야 할 때다. 여전히 대통령 눈치나 보고 계파 싸움에 매달려서는 희망이 없다. 새누리당뿐 아니라 보수 전체는 지금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정석구 편집인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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