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19일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사죄할 때 김 위원장은 붉은색 ‘헌법수첩’을 들고 있었다. 이 수첩 표지에는 헌법 제1조가 인쇄돼 있다고 한다. 아이러니다. 유승민 의원 복당 결정에 불만을 품고 잠적했던 김 위원장의 손에, 유 의원이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헌법 제1조가 들려 있다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가 선포한 공화주의는 유 의원의 표현대로 “왕의 지배를 받지 않고… 굴종적이고 주종적인 지배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한 사람의 자연인에게 주권을 귀속시키지 않는 체제다. 그러므로 자연인인 지배자의 사적인 감정에 공적 영역이 휘둘려선 안 된다. ‘배신’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감에 쫓겨 당을 떠나야 했던 유 의원으로선 공화주의를 규정한 헌법 제1조가 말 그대로 헌법 조항 가운데 ‘제1의 가치’로 다가왔을 법하다.
이렇게 사람마다 자신의 처지에서 절박하게 다가오는 헌법 조항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을 ‘나의 헌법 제1조’라고 부를 수 있겠다. 대통령 풍자 전단이나 비판 칼럼이 형사처벌을 받는 역류의 시대에, 언론 종사자인 내게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제21조가 그렇게 다가온다.
하지만 기댈 만한 조항을 찾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세월호에서 숨져간 아이들, 그리고 지금도 비인간적인 위험사회를 살아내야 하는 이들이 그렇다.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받아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구의역에서 숨져간 19살 청년도 마찬가지다.
헌법 제11조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선언한다. 성, 종교, 사회적 신분은 과거에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됐다. 그 역사적 경험을 반성하며, 차별의 이유가 돼서는 안 되는 항목들을 헌법에 적시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1987년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뒤 30년 동안 또 다른, 더 엄청난 유형의 차별이 전염병처럼 퍼진 과정을 지켜봤다.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이다. 이제 헌법 제11조에 ‘고용형태’를 차별 금지 사유로 추가해야 할 만큼 고통이 무르익었다.
입헌 공화국의 헌법은 시대의 변화와 절실한 과제를 반영하며 성장해온 생명체다. 미국 수정헌법은 표현의 자유(1조·1791년)를 필두로 노예제 폐지(13조·1865년), 상원의원 직선제(17조·1913년), 여성 참정권(19조·1920년), 18살 이상 투표권(26조·1971년) 등으로 이어졌다. 독일 헌법인 기본법은 1949년 제정 뒤 50차례나 개정됐다. 제정 당시에도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사형제 폐지 등 획기적인 조항을 담았던 기본법은 1990년대에 여성 우대 조처와 국가의 환경보호 의무 등을, 2000년대 들어선 동물 보호 조항까지 추가했다.
권력구조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은 대통령이 한번 뽑히고 나면 선거 때 약속을 깨고 어떤 황당한 일을 벌이든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절망한다. 그들에게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축소하고 견제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헌법 제1조’의 절실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시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을 정부와 정치권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하도록 국민투표를 활성화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렇게 지금은 없는 나라의 틀을 창조하는 게 개헌이다. 모두가 명실상부한 ‘나의 헌법 제1조’를 갖게 되는 과정이 개헌이다. 그것은 현실의 부조리와 고통을 끊어낼 상상력의 축제다. 개헌론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요즘, 고통받는 이들이 저마다 ‘나의 헌법 제1조’를 선언하는 것으로 그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어떤가.
박용현 정치 에디터piao@hani.co.kr
박용현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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