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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예숙의 마음의 집] 마음의 집 돌보기

등록 2016-07-03 17:52수정 2016-07-12 15:31

김민예숙
여성주의 상담가·춘해보건대 교수

아기 돼지 삼형제가 집 짓는 이야기가 있다. 일하기 귀찮았던 첫째와 둘째 돼지는 초가집과 나무집을 지었다가 늑대의 입김에 집과 목숨을 잃었다. 셋째 돼지는 시간을 들여 벽돌로 튼튼하게 집을 지었기에 늑대의 침입에도 끄떡하지 않는 벽돌집에서 잘 살았다. 공들여 지은 튼튼한 집이 육체를 위해 안전한 집이라는 것인데, 문득 마음의 집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표현할 때 대상에 대해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내가 어째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들여다보면 마음을 아는 것이 단순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내 감정과 생각은 어떤 순간에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과연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들과 연결됨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어떤 남자가 ‘여자에게 무시받아 기분 나쁘다’는 감정을 느낄 때 순간의 감정으로 여겨지지만, 자세히 보면 여성과 남성을 아래위로 위치시키는 기존의 생각과 연결되어 나온 감정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남녀를 계급처럼 나누는 생각은 한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사회가 전파한 생각이다. 타인에게 무시받는다면 누구나 다소간 기분이 나쁘겠지만, 이미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어떤 생각과 연결되느냐에 따라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높은 계급의) 나를 무시한 (낮은 계급의) 여자를 벌주어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는 현재 나의 감정에 영향을 주는 생각이 이미 자리잡고 있다. 남녀를 위아래로 나누는 것과 같이 잘못된 생각은 타인을 해치는 행동까지 하게 한다.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될 때마다 처음부터 새롭게 생각하여 반응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마음에 자리잡은 생각들을 동원하여 현재에 반응하게 된다. 어떤 생각을 마음 깊이 자리잡게 하고 그 생각을 나라고 여기며 사는 것은 마음의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사는 것과 같다.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마음의 집이 있는 것이다. 마음의 집을 짓는 최초의 재료는 원가족, 교육기관, 대중매체, 종교에 의해 전달된 생각들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스스로 사고할 수 있기 전, 환경에 의해 주어진 생각으로 지은 집은 낯선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문제는 그렇게 주어진 생각 중에는 인간을 평등하게 대하려는 생각도 있고 인간을 차별하려는 생각도 있는데, 미성숙할 때는 재료를 선별하지 못한 채 마음의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성장하여 비판적으로 사고할 때도, 이미 지어진 마음의 집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리모델링이 필요할 때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태어난 가정이나 사회의 종교나 정치적 가치관 또는 성역할 고정관념 등에 의문을 던져보는 과정 없이 그것을 재료로 집을 짓고도, 도전을 받을 때마다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생각을 더 단단하게 할 수 있다.

사람의 삶의 조건은 늘 변화하기에 생각도 변화해야 현재와 조화를 이루는 생생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주어진 생각들을 무조건 받아들여 집을 지은 후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마음은 외부와 단절된다. 주어진 생각들로 집을 지었다 해도 그 후 시간을 들여 그것들이 좋은 재료인지 따져보면서 고쳐나가면 외부와 소통하는 마음의 집이 된다. 마음의 집도 공들여 돌보아야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안전한 집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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