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전능하사 세계를 만드신 미국을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공화당을 믿사오니, 이는 보수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남 트럼프에게서 나시고…’ 2016년 공화당 정강은 유사종교의 신앙고백이다.
“우리는 미국 예외주의를 신봉한다.” 2016년 미국 공화당 정강의 전문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우리는 미합중국이 지구상 어떤 다른 나라와도 같지 않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인 역할 때문에 미국이 예외적임을 믿는다.”
전문의 첫 세 문장에서 핵심 단어인 ‘익셉셔널’(exceptional)의 뜻을 다시 확인하려고 사전을 찾아야 했다. ‘이례적일 정도로 우수한, 특출한, 극히 예외적인’. 미국은 ‘이례적일 정도로 우수하고 특출해서 지구상의 어떤 나라와도 비교될 수 없게 극히 예외적이다’라는 의미다. 이건 ‘미국이 원하는 것이 절대선이다’라는 선언이다.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은 패권국가여서 국가 정책이나 외교에서 다른 나라와 같이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학자들이 미국 외교정책을 논할 때 쓰는 말이다. 내세워야 할 주의나 가치가 결코 아니다. 미국 다수당의 정강 첫 문장에 선언된 이 말은 도대체 미국이 어디로 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012년 공화당 정강 전문의 첫 문장은 “기회의 추구는 우리의 시초부터 미국을 규정해왔다. 여기는 기회의 땅이다. 아메리칸드림은 모든 이를 위한 평등한 기회에 대한 꿈이다. 그리고 공화당은 기회의 정당이다”라고 쓰여 있다. ‘기회와 평등의 정당’ 공화당은 4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다른 나라와 결코 평등할 수 없는 특권 국가’의 공화당으로 바뀌었다.
정강은 온갖 극우적이고 황당한 견해로 가득 찼다. 성폭행이나 건강을 이유로도 여성의 임신중절을 반대하고, 기독교 경전 성경을 공립고교에서 가르치고, 석탄을 ‘청정’ 에너지원이라 하고, 의원들은 종교를 입법의 지침으로 사용하고, ‘가족의 가치’ 판사를 임명하고, 여성 장병의 전투 참여를 금지하고, 총기 규제를 거부한다. 게이, 레즈비언, 성전환자들의 기본적인 시민적 권리를 부정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후보 경선 과정에서 가장 논란을 부른 미국-멕시코 국경장벽 공약이 설마 정강에 반영되겠느냐는 의심도 여지없이 깨졌다. “우리는 남부 국경의 장벽 건설과 모든 통관항의 보호를 지지한다. 국경장벽은 남부 국경 전체를 커버해야 하고, 차량과 사람의 통행 모두를 중단시킬 수 있어야 한다.”
아시아태평양 정책에서 “마오쩌둥의 유사종교가 부활했다”, “중국의 현재 통치자들에 의한 마오쩌둥주의로의 회귀” 등의 표현으로 중국을 비난하고 적대시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된 것은 공화당의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 공화당은 백인 중하류층의 보수적 심리를 자극해서 표를 얻고서는, 그들의 이익은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부자 감세와 사회복지 축소, 작은 정부, 자유무역, 해외 군사개입이 공화당의 정책이었다. 트럼프는 사회복지 수호를 다짐했고, 자유무역을 반대했고, 해외 군사개입을 혐오했다. 공화당을 개혁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 정강은 트럼프의 그런 견해가 뼈대가 되리라 예상했다.
정강에는 사회복지 유지만 한 귀퉁이에 빈약하게 들어갔다. 오히려 미국 상류층과 공화당 주류들의 보수적 견해만 더 강화됐다. 트럼프가 공화당을 하이재킹(납치)했다고 아우성이 들리지만, 미국의 극우 보수들이 트럼프를 도구로 공화당을 완전히 하이재킹한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가장 극단적인 공화당 정강을 추모하며’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사설은 “공화당은 모두에게 열린 ‘빅 텐트’라고 주장하곤 했다. 지금 공화당은 미국인의 삶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 나라가 정치적 진보를 위해 필요한 상식이 결여된 파괴적인 정강으로 떠받쳐지는 ‘대장벽’ 정당이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예외주의를 신봉한다’는 정강은 유사종교의 신앙고백이다. 그건 사도신경 식으로 요약된다. “전능하사 세계를 만드신 미국을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공화당을 믿사오니, 이는 보수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남 도널드 트럼프에게서 나시고, 오바마와 민주당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8년 만에 히스패닉과 무슬림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백악관에 오르사, 전능하신 미국 앞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불량국가와 유색인종을 심판하러 오시리라. 인종주의를 믿사오며, 거룩한 총기와 보수주의자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감세하여 주시는 것과, 정권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