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행복팀 선임기자 사회적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괴담’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최근엔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사드 체계 배치 결정 이후에 일어난 사회적 갈등을 얘기하면서 괴담이라는 말을 했다. 대통령은 “명백하게 입증된 과학적인 근거보다는 각종 괴담과 유언비어”로 인해 “안보의 근간마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국가안보를 위한 정부의 과학적인 정책 결정이 흉흉한 헛소문에 흔들리는 불합리한 상황을 토로한 말로 들린다. 문득 괴담이란 말이 왜 사회 갈등과 논쟁이 커질 때 자주 등장하는지 궁금함이 생겼다. 기자 생활 초년을 돌아보면 괴담이란 말을 그리 본 적이 없는 듯한데, 우린 언제부터 괴담이란 말에 익숙해졌을까? 괴담이란 말의 사용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언론진흥재단의 기사검색 서비스인 ‘카인즈’(kinds.or.kr)에서 1990년 이후 8개 일간지에 ‘괴담’이 제목에 쓰인 기사들을 검색했다. ‘괴담’이 거쳐온 변화의 흔적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먼저 괴담이란 말이 자주 쓰인 건 뜻밖에도 최근이었다. 1998년 영화 <여고괴담>의 흥행 이후에 갖가지 흉흉한 소문을 가리키는 괴담 신조어들이 유행했다. 증시 괴담, 검찰 사정 괴담, 비아그라 괴담처럼 소문의 실체를 알기 어려울 때 ‘○○괴담’은 손쉬운 유행어로 쓰였다. 괴담 제목의 기사는 1990~1997년 0건이었으나 1998년 10건으로, 2007년 31건으로 늘었다. 대유행을 일으킨 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정 파동 때였다. 그해 괴담 제목 기사는 214건에 달했다. 둘째로 눈에 띄는 특징은 정부 정책과 관련해, 그리고 정부 발표에도 점차 괴담이란 말이 자주 쓰였다는 점이다.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이 담화에서 “소위 광우병 괴담”을 말한 일은 큰 변화였다. 확인하기 어려운 흉흉한 소문 자체가 관심 대상이던 괴담의 의미는, 이제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 논쟁에 대응하는 의미로 쓰이곤 했다. 특히 정부 정책이나 책임이 논란이 될 때 다른 주장을 누르는 정부의 언사로 쓰이는 일이 잦아진 점이 눈에 띈다. 철도민영화 괴담, 에프티에이 괴담, 메르스 괴담, 테러방지법 괴담처럼 정부나 매체들이 만든 괴담 신조어는 ‘여고괴담’ 식과는 다른 의미로 쓰였다. 검찰이 괴담 수사에 나서겠다는 발표가 이어지곤 했다. 다른 특징으로, 괴담론에 ‘과학 대 괴담’ 식의 대결 구도가 애용됐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넓은 논쟁은 작은 초점으로 축소되곤 했다. 2008년 당시 일었던 미국 검역체계 논란, 국민 건강권과 소비자 주권 요구와 같은 관심사가 광우병에 걸릴 확률 논쟁으로 초점을 옮긴 것은 괴담론의 효과였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강대국 간 갈등, 경제적 영향과 대책, 북핵 대응 공조 균열 등에 대한 관심사는 사드 전자파 유해성 논란에 초점이 맞춰질 때 축소될 것이다. 사회 갈등의 상황에서 괴담론이 부각된다면 논쟁의 소통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무엇보다 불안한 마음이라는 사회현상이 왜 생겼는지에 주목하기보다 불온한 의도를 부각해 갈등을 풀 실마리를 찾기 어렵게 한다. 다른 주장에 괴담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낙인 효과는 대화의 문을 닫는다. 갈등 관리와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책임을 맡은 정부는 논쟁과 갈등을 어떻게 슬기롭게 풀 것이냐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기에 대중적 유행어라 해도 괴담은 정부가 쓰기엔 부적절한 말이다. 대결 프레임을 부각해 더 중요하고 복잡한 논쟁을 억누르는 괴담론의 위험한 불통 효과는 늘 경계해야 한다.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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