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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있었다

등록 2016-08-12 20:15수정 2016-08-12 20:26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브누아트 그루 지음, 백선희 옮김, 마음산책, 2014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20대에 만든 영화, <매그놀리아>(1999)는 등장인물도 많고 내용도 복잡하지만 내게 이 장면만은 영원하다. 아버지에게 성폭력당한 여성은 자기 그림에 이렇게 썼다. “그 일은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부정해도, 피해 당사자조차 믿을 수 없어도 그 일은 분명히 있었다, 그 일은 있었다, 그 일은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은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이다. 대개 역사적 인물에 관한 책은 “~ 생애”,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처럼 그들의 업적이나 상황이 제목이 된다. 반면, 위대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사람의 전기는 <~가 있었다>라고, 일단 알려야 한다. “나폴레옹이 있었다”라는 말은 없다. 프랑스어 제목, ‘Ainsi soit Olympe de Gouges’는 “올랭프 드 구주, 아멘” 혹은 “올랭프 드 구주, 그녀의 뜻이 이루어질지어다”쯤 되지만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있었다”는 “없었다”는 뜻이다. 모르는 역사는 없는 역사다. 이 책은 프랑스의 저명 작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브누아트 그루가 쓴 올랭프 드 구주(1748~1793)의 이야기다. 드 구주가 45세에 단두대에서 처형될 때까지 쓴 글을 체계적으로 모은 저작집이자 평전이다. 의외의 기시감. 나는 잠시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유관순 열사의 위인전에서, 일제는 그녀를 고문하다가 동생들을 끌고 온다. 어린 두 동생은 “누나, 배고파. 어서 나와”라며 우는 장면이 있다. 나도 엉엉 울었다.

프랑스혁명(1789~1794) 당시 드 구주가 쓴 <왕비(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헌정하는 여성 권리 선언(1791년)>의 전문(前文)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남자여, 그대는 정의로울 능력이 있는가? 이 질문을 그대에게 던지는 건 여자다. 적어도 이 권리만큼은 여자에게서 빼앗지 말아 달라”.

그리고 유명한 제10조 “근본적인 견해까지 포함해서 누구도 자신의 견해 때문에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 의사 표현이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흐리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 현실을 자각한 여성에게는 일상이 연설대요, 단두대다. 바로 앞의 제9조도 인상적이다. “유죄로 선언된 모든 여성은 법에 따라 준엄하게 심판받는다”(148쪽). 통념처럼 여성들은 보호를 요구하지 않았다. 미슐레의 말처럼, 잡범 일곱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바스티유 감옥을 턴 것은 남자들이었지만, 왕의 목을 잡은 것은 여성들이었다.

올랭프 드 구주는 후작의 혼외 딸로 태어나 푸줏간 주인의 손에서 자랐다. 열여섯에 결혼, 다음해 남편이 사망한다. 서른두 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문맹인 그녀는 구술로 글을 남겼다. 희곡, 소설, 회고록, 정치책자, 편지, 선언문, 변론 등 생애만큼이나 폭넓다.

그녀는 성차별뿐 아니라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인종 차별에 격렬히 저항했다. 이혼, 동거의 자유와 미혼모와 사생아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그녀의 머리칼을 자르고 길거리에서 그녀를 끌고 다녔던 공포정치가들과 후세대들은, 대담하고 똑똑했던 이 여성을 ‘괴물’로 불렀다. 무모한 여자, 정신이 불안정한 여자, 용감한 미치광이, 부도덕한 괴물….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억압받아온 모든 집단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역사를 모르는 여성에게 미래는 없다. 공부해야 한다. 여성주의 입문서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이 책이어야 한다.

‘문명국’ 프랑스도 여성참정권은 법률상으로는 1946년에야 보장되었다. 대한민국은 1948년. 단두대 없이 주어진 권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성을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정당에 투표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인권의 전제는 여성의 인권이다. 인권이 있고 그 아래에 혹은 나중에 ‘그 외 사람들’의 인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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