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지성팀 선임기자 올해는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가 타계한 지 400년이 되는 해다.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출신 인물 셰익스피어가 우리가 아는 극작가 셰익스피어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400주기 기념 공연과 각종 행사가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읽은 셰익스피어 관련 서적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책이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유향란 옮김)이었다. 원제가 ‘The Shakespeare Guide to Italy’(2011)인 이 책의 지은이 리처드 폴 로는 변호사이자 셰익스피어 연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누가 썼든 간에, 우리가 수백 년 동안 사랑해 온 이 작품들을 쓴 사람은 자기 눈으로 직접 이탈리아를 보았을 수밖에 없다.” 사실 셰익스피어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극히 미미하다. 친필 원고는 전무하고 그가 서명한 서류 몇 건과 출생 및 사망 증명서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탈리아를 배경 삼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들은 그 지은이가 이탈리아를 여행했거나 그곳에서 살았음을 입증한다고 지은이는 판단한다. 그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희곡 가운데 허구적 작품 중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한 것이 달랑 한편인 데 비해 이탈리아를 배경 삼은 것이 10편이고 나머지 10개 나라와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한편씩이다.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묘사된 이탈리아는 정확하고 구체적이면서 매우 훌륭하다.” 이 문장에 대해 어떤 이들은 코웃음을 치거나 대뜸 반박하려 들기도 할 것이다. 가령 셰익스피어가 밀라노나 베로나, 파도바 같은 내륙 도시를 배가 드나드는 항구 도시로 묘사했다거나 황제가 없었던 밀라노에 황제 궁이 있는 것처럼 썼다는 점을 들어 그의 이탈리아 지식이 피상적이고 그릇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 지은이는 꼼꼼한 현장 답사를 거쳐 위의 내륙 도시들이 강과 운하로 연결되어 실제로 배가 드나들었으며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5세가 셰익스피어 당시 밀라노를 방문했음을 확인한다. <한여름 밤의 꿈>의 무대 아테네가 그리스 수도가 아니라 ‘작은 아테나’로 불린 이탈리아 북부 소도시 사비오네타라는 과감한 주장, 베네치아 유대 게토의 유일한 펜트하우스를 확인해 그 건물이 <베니스의 상인> 주인공 샤일록의 집이었음을 밝히는 ‘고증’도 놀랍다. “작가는 알프스 기슭에서부터 이탈리아 반도 끄트머리까지 여행했을 뿐 아니라, 시칠리아 섬을 종횡으로 누비고 인접한 아드리아 해와 티레니아 해를 항해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배경 희곡들과 현장을 일일이 대조한 결과 지은이가 내린 결론이다. 물론 그의 주장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 않다. 가령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하지 않는 <끝이 좋으면 다 좋아>의 배경을 피렌체로 못박고 이 도시의 이곳저곳을 실제 무대와 짝짓는 추정은 참신한 만큼 오류의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은이의 작업은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작품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역사학자 도진순의 이육사 시 고증과 해석을 둘러싸고 다양한 견해가 나왔다. 문학 연구자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풍부한 해석을 향해 열려야 할 시를 구체적 인물과 장소, 사건으로 좁혀 이해하는 일이 비문학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에서 보듯 문학 작품과 실제 배경에 대한 고증과 연구는 문학적 토론을 유발하고 작품 해석의 여지를 넓히는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