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 조류가 바뀌고 있다. 이슬람국가의 위축이 완연하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전쟁 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고대 이래 지속돼온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둘러싼 열강의 쟁패라는 본질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 조류가 바뀌고 있다. 이슬람국가의 위축이 완연하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전쟁 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이슬람국가에 의해 가려져 있던 중동 전쟁의 본질이 다시 드러나고 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둘러싼 열강의 쟁패이다.
우선, 알레포에서 공세를 강화하는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부군 세력이다. 그 뒤에는 러시아와 이란이 있다. 미국 등 서방은 25일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시리아 정부군과 이를 지원하는 러시아가 알레포의 구호대 등 민간인에게 무차별 공습을 한 것에 대해 비인도적 만행이라고 규탄했다. 시리아 정부군의 알레포 공세는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전황을 바꿀 최대 변수다.
다음으로 터키다. 그 뒤에는 미국 등 서방이 있다. 지난 8월부터 시리아 영내의 이슬람국가 영역에 지상군 공격을 시작한 터키는 이슬람국가의 수도 격인 락까 공세를 저울질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25일에도 쿠르드족 병력 배제를 조건으로 한 미국과의 락까 함락 공세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터키의 군사력이면 락까 함락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슬람국가는 2014년 6월 출현 이후보다 영역이 약 4분의 1이 축소됐다. 락까가 위협받는데다, 이라크 영내의 최대 근거지 모술에도 이라크 정부군의 공세가 준비되고 있다. 이슬람국가가 준국가적 성격을 잃고 무장집단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다.
이슬람국가의 탄생은 미국의 전략적 실패인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면서 생긴 세력공백 때문이다. 아랍의 봄으로 촉발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아사드 정권의 약화도 작용했다. 그 후 이슬람국가의 생존은 주변 중동 국가들이 방치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아파인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붕괴를, 터키는 쿠르드족 세력 확장 방지를,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해 내전구도를 극렬 이슬람주의 세력과의 대결로 만들려고 했다. 모두가 이슬람국가를 필요로 했다.
지난해부터 러시아가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며 개입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죽어가던 아사드 정권이 살아나고, 러시아가 제국시대 이래 오랜 꿈인 중동 진출에 괄목한 만한 성과를 냈다. 다른 열강과 주변 국가들이 이제 더는 방치할 상황이 아니다.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무대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한가운데이다. 인류 최초로 농업과 문명이 시작된 곳이다. 중동은 이 초승달 지대를 가운데 놓고 북으로는 터키의 아나톨리아 고원과 이란 고원 등 산악지대, 남으로는 아라비아 사막 등 건조지대이다. 북에서 내려온 초원 유목세력, 남에서 올라온 사막 유목세력들이 초승달 지대를 장악하며, 여기를 중심으로 제국들이 명멸했다. 부와 문명이 있고, 세 대륙을 잇는 요충이고, 근대 이후는 석유가 있었다. 중동 석유의 대부분은 초승달 지대와 그 주변에 묻혀 있다.
현대 중동분쟁의 근원은 1차대전 뒤 영국과 프랑스의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다. 초승달 지대를 남북으로 갈라 북은 프랑스가, 남은 영국이 세력권으로 했다.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그리고 준국가세력인 팔레스타인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나라들은 모두 초승달 지대에 걸쳐 있고, 2차대전 이후 중동분쟁의 핵심 무대이다.
냉전시대 중동분쟁은 결국 미국과 소련의 초승달 지대 장악 싸움이었다. 이슬람국가로 가려졌던 초승달 지대를 둘러싼 열강의 패권이 재점화됐다. 전략적 우위를 지키려는 미국,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러시아, 새롭게 진출하는 중국, 지역 패권을 둔 터키·이란·사우디, 그리고 이스라엘의 각축, 이슬람국가 등 이슬람주의 세력이 얽혀 있다.
초승달 지대는 이제 지구온난화로 더는 비옥하지 않다. 석유도 전략적 가치가 감소한다. 하지만 초승달 지대의 지정학적 전략가치는 여전하다. 서방은 안보의 최대 위협 세력인 이슬람주의 세력 제어를 위해서도 초승달 지대는 통제해야 한다.
누가 이기고 져서 끝나는 전쟁이 아니다. 이미 국경선은 의미가 없고, 이 지역의 국민국가 체제 자체가 붕괴했다. 초승달 지대의 국가들인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요르단,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현재처럼 존속하기 힘들 것이다.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은 ‘초승달 지대 전쟁’으로 바뀌고 있다.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