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행복팀 선임기자 ‘과학기술인 말하다: 현장의 목소리로 채우는 과학기술정책 제안’, 이런 긴 이름의 토론 행사를 지난 2012년에 도운 적이 있다.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이 그해 대통령 선거를 맞아 스스로 나선 열린 토론마당이었고 나는 <한겨레> 과학웹진의 운영자로서 참여했다. 5월부터 네 차례 연속 토론을 열었고 11월엔 다들 품앗이로 두툼한 정책제안 보고서를 펴냈다. 누구나 ‘계급장’ 떼고 별명을 쓰며 1인1표 권한만 갖고서 참여하는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고교생부터 원로 과학자까지 남녀노소 참여자들은 ‘과학 정책 수다’를 떨며 즐거워했다. 보고서는 후보 캠프들에 전자우편으로 보내졌다. 한 후보 캠프만 반응을 보이고 별 반향이 없었지만, 그래도 다들 만족스런 보람을 느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최근 미국 대선에서 미국 사회가 대통령 후보들한테 과학·공학·의학 정책을 물으며 던진 ‘20개 물음’과 후보들의 답변(sciencedebate.org/20answers)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물음 이벤트는 비영리단체가 이끌고 미국 최대 과학기술단체인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등이 지원했다. 자료를 읽다 보니 뻔할 듯한 물음들이 새삼 달리 보였다. 한 사회가 대통령이 알아야 한다고 여기는 과학기술 쟁점을 스무 가지 꼽는다면 그 안에 무엇이 우선순위로 들어갈까? 과학·공학·의학은 그저 전문가사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 삶의 질을 좌우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한 나라 대통령이라면 그런 전문 지식과 기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를 잘 알아야 할 터이다. 경제성장의 견인차인 과학·공학 혁신을 이룰 방안을 묻는 물음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비슷했다. 지구촌이 공유하는 낯익은 물음도 많다. 대통령은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처할지, 생물다양성 감소나 해양오염을 어찌 다룰지 묻고, 공중보건의료를 향상할 어떤 방안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인터넷 보안은 어떻게 강화하고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보호할지 물었다. 핵발전(원전)의 확대 또는 축소 정책을 묻고 닥칠지도 모를 재앙의 예방대책을 물었다. 물음은 다양하지만 어떤 공통점도 느껴졌다. 많은 물음은 과학·공학·의학의 시대에 이 사회가 요구하는 ‘안전한 삶’이나 ‘지속가능성’에 관한 것들이었다. 연구자들이 관심을 기울일 만한 물음들도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물음은 ‘과학 연구진실성’ 문제였다. 대통령 후보한테 연구진실성 문제를 묻는다니, 사실 낯설다. 전문가의 전문지식이 제대로 생산·발표되지 못하고 사회 논쟁에서 잘못 사용되는 사례가 늘기 때문일까? 물음은 정부기관 소속 연구자의 연구결과에서 정부 개입을 막고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일 방안을 제시해달라고 주문했다. ‘대통령이 알아야 할 과학기술’은 대통령이 세부 전문지식을 알아야 함을 뜻하진 않는다. 그보다 대통령이 과학기술 연구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것이 올바르게 사용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뜻할 것이다. 신뢰를 받는 전문가가 누구인지 찾아내 공공의 역할을 맡기고 또한 그 전문가의 결과물이 다른 전문가에 의해 충분히 평가받도록 투명성을 보장할 때,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의 과학기술 덕후력도 높아지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도 내년 대선을 맞아 여러 과학기술단체가 후보들한테 여러 물음을 던질 것이다. 과학기술 거버넌스, 연구환경 개선 같은 문제에만 매달리지 말자. 관심을 넓혀 현실 삶의 질과 논쟁, 갈등에서 과학기술이 공익적으로 투명하게 쓰이도록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마련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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