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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간신’은 없다

등록 2016-11-16 08:12

“세 개의 가로획은 하늘, 땅, 사람을 뜻하며,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것이 왕(王)이다.” 중국 전한 때의 유학자 동중서가 ‘임금 왕’ 자를 풀이한 것이다. 그럴듯하지만 이는 유학의 사고에 맞춰 갖다 붙인 것이란 비판도 많다. 갑골문을 보면, 왕 자는 도끼 모양을 딴 것이다. 애초 왕은 지도자라기보다는 지배자였고, 그 권력은 백성의 지지보다는 조직한 무력에서 나왔을 것이다. 돌아보면, ‘성군’이라 불리는 임금이 과연 몇이나 되던가.

왕은 너무도 무서워서 신성한 존재였다. 무력의 독점과 잘 조직된 감시기구, 역모에 대한 가혹한 처벌은 왕권에 대한 도전의 싹을 잘랐다. 19세기에 조선 전국 곳곳에서 수도 없이 ‘민란’이 일어났지만, 고을 수령의 몸에 직접 해를 가한 일은 거의 없었다. ‘왕의 명’을 받은 사람조차 함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1898년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를 열고, 군민(임금과 백성의) 공치를 요구한 것은 그래서 혁명적이다.

1854년 일본 에도 정부는 미국과 화친조약을 맺을 때, 미국의 프레지던트(president)를 ‘합중국 왕’이라고 번역했다. 그 4년 뒤 수호통상조약을 맺을 때 처음으로 대통령이라 했다. 프레지던트는 ‘앞에 앉다’, ‘주재한다’는 뜻의 라틴어(praesidere)에 뿌리를 두고 있다. 왕과 대통령의 차이는, 그 지위가 헌법과 법률 위에 있느냐 아래에 있느냐다. 설령 왕을 선거로 뽑는다 해도 법 위에 존재한다면, 민주공화국이라 할 수 없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100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 우리 언어엔 왕정 시대의 흔적이 적잖다. 대통령 주변에서 국정을 농간한 공직자를 ‘간신’이라 하는 것도 그 하나다. 비유로 쓴 말이겠지만, 대통령을 잘못 보필한 것이 문제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공직자가 섬겨야 할 대상은 주권자 국민이지, 대통령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간신’은 없다. 썩은 공직자가 있을 뿐.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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