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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재봉의 문학으로] 문학이여, 11·12에 응답하라!

등록 2016-11-17 18:23수정 2016-11-17 20:51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축제 같은 시위였다. ‘박근혜 퇴진’ 손팻말과 촛불을 든 이들은 밝은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행진하다가 아는 이를 만나면 유난히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누었다. 헤엄치듯 힘겹게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면서도 남을 밀치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유모차의 아이나 휠체어에 탄 이와 마주치면 물러서서 길을 터주었다. 광장 한켠에서는 마침 생일을 맞은 친구를 위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젊은이들도 보였다. 경찰 물대포가 사라진 시위는 긴장과 불안 대신 행복감에 가까운 긍정적 에너지로 가득 찼다. 정제된 슬픔과 승화한 분노가 숭고미에 육박하는 장관을 빚어낸 11월12일이었다.

이날 시위에는 당연히 작가들도 참가했다. 한국작가회의 깃발 아래 모인 회원들뿐만 아니라 광화문광장 주변 이곳저곳에서 혼자서 또는 두셋씩 움직이는 문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작가들은 11·12를 어떻게 기록할까. 11·12에 앞서, 각각 1960년 4·19와 1987년 6·10을 겪고 쓴 박태순의 두 소설 ‘무너진 극장’과 ‘밤길의 사람들’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단편 ‘무너진 극장’은 4·19 유혈시위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라는 ‘결실’을 맺기 전날인 4월25일 하루를 다룬다. 대학생인 화자 ‘나’와 두 친구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친구의 망우리 무덤을 찾고, 역시 시위 도중 중상을 당해 입원한 또다른 친구를 위로 방문한 다음 교수단 데모대를 지켜보며, 밤이 되자 술을 마시고는 우연히 시위 군중에 섞이어 ‘정치 깡패’ 임화수 소유 극장을 공격하게 된다.

“(사람들은) 일방통행적인 질서의 함몰된 세계를, 마치 저 평화극장을 부수듯 잔인하게 부숴버림으로 인해서, 그들이 몰고 온 고귀한 무질서가, 미래에 있어서는 고귀한 자유, 고귀한 행복, 고귀한 가치로 축조 건설되리라고 몇 번이고 강조해서 생각했을 것이었다.”

이 작품은 이승만의 하야와 이듬해의 5·16 쿠데타를 거쳐, 그렇게 권력을 잡은 박정희가 3선개헌으로 영구집권을 꿈꾸기 전해인 1968년에 발표되었으며, 미완의 혁명과 재빠른 반동 및 반혁명의 고착화 예감 앞에서 “혁명은 의연히 계속 진행 중임을” 애써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중편 ‘밤길의 사람들’은 6월항쟁이 한창인 거리에서 만나고 헤어졌다 다시 해후하는 남녀 노동자의 이야기다. “밤길의 사람들은 새로운 기질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최루탄이 터지면 마치 불꽃놀이에 놀란 강아지들처럼 흩어졌다. 그러나 금세 다시 모여들었다. 결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11·12와는 다르게 최루탄이 등장하지만, 일종의 ‘축제’ 분위기라는 점에서는 통하기도 한다.

1988년 초에 발표한 이 소설의 결말 역시 승리나 낙관과는 거리가 멀다.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던 조애실은 농성자들이 투표 끝에 농성을 풀고 해산하기로 하면서 “우리 모두 엉엉 울었다”고 보고한다. “그렇게 그렇게 갈구했어도, 이 땅에 우리 모두가 원하던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 그러니 우리의 농성은 성공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도 속상하고 분해서 울었던 것”이라고, 자각한 노동자 애실은 헤아린다.

11·12가 4·19와 6·10에 필적하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성취로 이어질까. 그 답은 아직 미지수다.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청와대를 향해 촛불을 흔들고 함성을 지른 백만 시민의 염원에 부응하자면 정치와 사법과 언론 등이 각기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문학 역시 그 함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4·19와 6·10의 현장을 누비며 기록한 박태순처럼, 11·12에 문학의 이름으로 응답할 믿음직한 ‘후배’를 기다린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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