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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디어 전망대] 경제 권력에 한없이 무딘 붓끝 / 심영섭

등록 2016-11-17 18:24수정 2016-11-17 21:07

심영섭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신문 제작 비용이 20%가량 늘었다고 한다. 이 수치도 윤전기를 보유한 신문사의 경우이고, 대쇄를 하는 신문사의 사정은 더 복잡하다. 원인은 그동안 숨겨왔던 광고성 기사가 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어서 지면광고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한 일간신문이 신문 전체를 띠지로 덮는 광고를 해서 ‘언론이기를 포기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협찬의 대가로 호의적인 기사를 써주는 행위와 누가 보더라도 광고라고 할 수 있는 띠지 중 무엇이 더 문제일까? 그렇다면 대기업의 횡포에는 침묵하면서 신규사업 투자나 전략발표회는 성실하게 써주는 경제 보도는 띠지 광고보다 정당할까? 혹시 신문사 경영진이 팔리지 않는 신문의 원인을 광고주에 대한 충성도 부족에서 찾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목적도 불분명한 재단법인에 수천억원을 기부한 재벌기업에 대한 비판의 붓끝은 여전히 무디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삼성은 노사 문제의 협력과 연구비 등의 정부지원을 약속받고 최순실 쪽에게 28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사이 삼성은 2015년 7월 삼성백혈병 조정위원회에서 어렵게 합의한 1000억원의 공익재단 설립 권고안은 백지화했다. 언론은 정유라씨에게 보내준 35억원에는 분노하면서, 삼성이 자사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피해자에게 고작 500만원에 합의를 강요한 일은 침묵한다. 삼성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조력한 대가로 국민연금으로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도움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는다. 국민연금은 이 과정에서 자문기구도 거치지 않고 전문위원회의 반대도 무시했다. 결과적으로 연기금으로 재벌일가의 재산을 불려주고, 주주와 연금납부자에게는 막대한 손실을 입힌 셈이다. 단말기 유통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단통법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얻는 기업도 삼성이었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스캔들의 화살은 좀처럼 부패한 재벌기업에 돌아가지는 않고 있다.

정치추문과 부패한 기업경영진의 구속, 불투명한 시장구조가 신문 기업에는 광고 수주의 좋은 빌미일 것이다. 줄줄이 대기업 총수가 징역을 사는 동안 기업은 사주로 인해 발생한 위험을 줄일 목적으로 광고를 늘렸고, 정부는 최순실식 ‘창조경제’를 신문에 홍보했다. 재벌에게는 인수합병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주주의 피해나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보다는 차라리 신문 광고가 더 저렴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신문 기업이 덕분에 풍요로운 겨울을 맞이한 것도 아니다. 여전히 신문 경영은 위기이고, 독자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신문이 전 국민의 1%도 되지 않는 정치권력과 재벌, 기득권 세력에 맞춤형 기사를 제공하는 동안 독자는 광장으로 떠났다. 지난 12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공영방송인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의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비난을 받으며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다. 더 슬픈 현실은 ‘기레기’ 대열에도 끼워주지 않는 대다수 신문기자들이다. 정치권력은 정해진 유효 기간이 있지만, 경제권력은 없다. 신문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상품이기에 수익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광고를 포기할 순 없다. 그러나 읽히지 않는 신문은 한낱 폐지에 불과하다. 무딘 붓끝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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