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논설위원
나는 맥주를 좋아한다. 일년 365일 가운데 맥주를 마시지 않는 날을 손에 꼽을 정도다. 혀와 목을 즐겁게 해주고, 알코올 도수가 낮아서 취기가 오르기 전에 벗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맥주의 가장 큰 매력이다. 19세기 중반 독일에서 맥주는 ‘사회민주주의의 주스’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 무렵 맥주는 각종 동호회의 토론 문화와 잘 어울리는 술이었다. 새로운 사회 세력으로 성장하던 산업 노동자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을 꺼렸다. 야콥 블루메는 “의식을 가진 노동자는 맥주라는 절제의 무기를 손에 들고, 그들 눈에 통제 불능인 폭도가 마셔대는 독주병을 노려보며 한사코 그것과 거리를 두었다”고 <맥주, 세상을 들이켜다>란 책에 썼다.
맥주를 만드는 재료. 통에 담긴 것이 맥아 추출물이다. 정남구 기자
2010년부터 2013년 사이 도쿄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일본의 여러 맥주를 맛볼 기회가 있었다. 일본 맥주는 프리미엄급 맥주가 여러 종류이고, 지방 특산 맥주도 발달해 있다. 맛있는 맥주로 혀가 매일 호강을 하다 귀국할 때가 되니, 이별이 아쉬웠다. 고민을 덜어준 것은 꽤 오래전부터 맥주를 직접 만들어 마시던 동서였다. 어느날, 맥아 추출물과 호프, 양조통, 페트병을 내게 갖다주었다. 레시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물만 끓일 줄 알면 맥주를 만들 수 있다.”
맥주는 보리를 싹틔워 말린 맥아(몰트)를 재료로 하여 만든 술이다. 보리 싹에 있는 아밀라아제는 녹말을 엿당(맥아당)으로 분해하는 구실을 한다. 우선 몰트를 분쇄해 따뜻한 물에 넣고 우려내 당을 추출해 낸다. 이 맥즙에 호프를 넣고 끓인 뒤 식히고, 맥주 효모를 넣어 1~2주가량 적정한 온도 아래 두면 맥주가 된다. 효모는 엿당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한다.
맥아에서 맥즙을 직접 우려내지 않고도 맥주를 만들 수 있다. 이미 만들어놓은 맥아 추출물을 사서 물에 풀면 맥즙이 된다. 그래서 물만 끓일 줄 알면 맥주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미국의 수제맥주 평가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은 맥주 가운데 상당수가 맥아 추출물을 사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2년 전 내가 처음 만든 맥주도 그렇게 간단하게 만든 것이었다. 물론 1차 발효를 끝낸 맥주를 내압 페트병에 넣고 설탕을 조금 넣어 병 안에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 뒤, 냉장고에서 좀 더 숙성시켰다. 그 맥주는 그때까지 내가 맛본 맥주 가운데 맛이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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