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디터 1982년 1월 미국 공군의 특수비행팀 선더버드 소속 항공기 4대가 한꺼번에 추락해 조종사 4명이 숨지는 전대미문의 사고가 났다. 선더버드 조종사는 미 공군 에이스 중의 에이스다. 최정예 조종사가 모는 항공기가 1대도 아니고 4대가 동시에 추락하자, 미국 사회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며 큰 충격에 빠졌다.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당시 비행 훈련을 지휘한 항공기의 기체 이상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기체에 이상이 없던 다른 항공기 3대는 왜 추락했을까? 사고 당시 선더버드 항공기 4대는 훈련 대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동시에 땅으로 돌진했다. 리더를 따라 나머지 항공기 3대도 땅으로 내리꽂은 것이다. 미 공군의 최정예 조종사들이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아마 선더버드 조종사들은 추락하는 리더를 따라야 할지 아니면 혼자서 고도를 상승해 살아남아야 할지 갈등했을 것이다. 이들이 추락하는 리더를 따라 끝까지 편대 대형을 유지한 이유를 알려면 특수비행팀의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시속 600㎞ 넘는 속도로 비행하는 선더버드는 1~2m 간격으로 대형을 유지하며 온갖 특수비행 기술을 선보인다. 0.000001초라도 실수하면 나도 죽고 옆 동료도 죽는다. 특수비행팀이 편대 비행을 할 때는 리더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 때문에 1982년 1월 당시 나머지 선더버드 조종사들은 마지막까지 리더의 판단과 결정을 믿고 따랐다. 미 공군 선더버드 팀원의 생사를 결정하는 리더가 있듯이 대한민국 국군에도 리더가 있다. 국군 장병 63만명의 리더는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다. 유사시 전쟁 승리를 위해 대통령이 판단하고 결정하면 설사 그 길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도 군인들은 따라야 한다. 가령 사단이나 군단의 ‘질서있는 후퇴’를 위해 연대 병력을 지연 작전에 투입할 수 있고, 적의 예봉을 꺾기 위해 대대 병력에게 돌격작전을 명할 수 있다. 이 작전에 투입된 병력들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래도 대통령은 전쟁에서 이기려면 ‘내 살을 내주고 상대 뼈를 취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군 장병에게 이런 명령을 내릴 자격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초등학교 동창 아버지에게 10억원어치 현대차 납품 특혜를 줬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정유라씨 초등학교 동창 학부모의 소소한 민원까지 알뜰하게 챙긴 박 대통령이라면, 전시에 이런 일도 가능할 법하다. 위험하지만 꼭 필요한 작전 개시 직전에 “투입 부대를 바꾸라”는 청와대의 지시가 급하게 내려온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작전 투입 부대에 정유라씨 초등학교 동창이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국군은 순식간에 영이 서지 않는 오합지졸로 변할 것이다. 유사시 ‘돌격 앞으로’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그 명령을 최순실이 내린 게 아니냐”며 지휘관에게 따져 묻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공안검사 출신답게 연일 안보태세 확립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확고한 안보태세를 갖추려면 믿을 수 없는 국군통수권자를 바꾸는 게 가장 급하다고 생각한다. 63만 국군 장병의 생명을 더 이상 박근혜 대통령(또는 최순실)에게 맡길 순 없다. 국군통수권자는 박 대통령처럼 최순실씨가 골라줬을 카키색 외투를 입고 장병들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폼 잡는 자리가 아니다. 탄핵으로 직무정지된 박 대통령이 만약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국군통수권자로 복귀한다면, 국군을 무장해제하는 이적행위가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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