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에디터 어쩌다 보니 개근을 했다. 10월 말 서울 광화문 광장에 촛불이 켜졌고, 커져서 횃불이 되더니, 다시 온나라에 들불로 번지고,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이후엔 폭죽으로 변해 밤하늘을 수놓았다. 관찰하고 기록하고 참여했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주섬주섬 날씨에 맞춤한 옷을 챙겨 입었다. 오래 앉아 있어도, 오래 걸어도 고단하지 않았다. 광장에, 청와대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 덕분이었다. 촛불을 들어 아름다운 걸까, 아름다운 사람들이 촛불을 드는 걸까. 긴장과 두려움은 없었다. 중앙무대와 곳곳에 마련된 자유발언대는 그곳대로, 무대와 마이크 없이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는 주변부는 그곳대로, 촛농처럼 뜨거운 열정과 발랄함이 그득했다. 장수풍뎅이를 비롯해 뭘 연구한다는 모임 깃발은 왜 그리 많은지, 푸른 기와집의 푸른 알약 해명 이후엔 고산병 연구회까지 등장했다. 혼자 온 사람들, 민주묘총, 하야하개 깃발은 또 어떤가. 손팻말과 펼침막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박근혜는 감옥으로, 우리는 일상으로!”, “공 좀 차자, 내려와라” 같은 펼침막은, 그 자체로 피로회복제였다. 거기에 100만명이 부르는 ‘떼창’, ‘7시 소등 퍼포먼스’에 촛불 파도까지…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였다.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할 때도 많았다. 매 순간, 지금 여기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하고 고마웠다. 그렇게 서서히 중독돼갔다. 약물에 기대지 않고도 취했다. 그 치명적인 유혹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광장 중독이다. 밤늦게 돌아가는 버스에서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질문들도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쏟아져 나왔을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왜 그땐 못 했을까.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세월호의 7시간 비밀은 이제야 봉인이 해제될 운명이었을까.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무기로 정보의 벽을 없애면서 스스로 학습하고 공유하며 행동하는 ‘스마트한 시민들’은 해를 넘길 것으로 보이는 긴 싸움에서 계속 단단할 수 있을까. 마주 잡은 손 놓지 않을 수 있을까. 역사는 2016년 겨울을 어떻게 기록할까. 모두 어렴풋하게 보일 뿐 명쾌하지 않다. 광장의 촛불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데 그 끝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난 그 끝이 없었으면 좋겠다.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번졌던 프랑스 68혁명의 구호처럼 “상상력에 권력을” 부여해 ‘박근혜 퇴진’이나 ‘정권교체’ 너머 그 이상을 꿈꿨으면 좋겠다. 그 꿈은 일곱 빛깔 무지개보다 훨씬 다채롭기를, 그래서 그 꿈의 총합이 검정이 아니라 눈부신 빛으로 수렴되기를 희망한다. 그 꿈은 시험 없는 학교일 수 있다. 돈 걱정 없이 공부하고 일자리를 찾고 맘 놓고 사랑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어떤 노동과 놀이를 할 때 뿌듯하고 행복한지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사회일 수도 있다. 기본소득 100만원 정도 기꺼이 주는 나라의 저녁이 있는 삶이나 주30시간 노동일 수도 있다.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과하게 꾸미거나 뜯어고치지 않아도 각자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존중받는 세상일 수도 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외국 친구에게 얼굴 화끈거림 없이 나라 이름을 댈 수 있는 나라일지도…. 그런 꿈을 꾸는 공간이 꼭 실제 광장일 필요는 없다. 무겁게 짓누르고 옥죄던 억압에서 벗어나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광장을 가슴속에 하나씩 품는다면, 그리고 그 광장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촛불 하나 켜둔다면. 올겨울, 우리는 이미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는 점을 확인하지 않았나.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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