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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재봉의 문학으로] ‘문단 성폭력’을 넘어서

등록 2016-12-15 18:20수정 2016-12-15 22:34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2015년 한국문학의 열쇳말이 표절과 문학권력이었다면 올해의 그것은 성폭력이었다. 김현 시인이 ‘질문 있습니다’란 글에서 문단 성폭력 실태를 까발린 뒤, 10월 중순부터는 남성 시인들이 여성 독자나 문학 지망생 들을 상대로 저지른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잇따랐다. 무려 10명이 넘는 시인·소설가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문단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으로까지 번진 이 사태의 의미와 파장을, <문학동네>와 <21세기문학> 두 잡지 겨울호가 마련한 좌담을 통해 곱씹어 보자.

“이 폭로들을 따라 읽으면서 저는 일주일 만에 문학관이 다 바뀌어 버렸어요.”

<21세기문학> 좌담에서 젊은 문학평론가 장은정은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방식의 문학관이 약자를 착취하고 강자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를 소름끼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 그는 덧붙였다. 여기서 그가 문제삼는 것은 작품과 현실의 분리를 주장하며 예술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자율주의’ 또는 ‘미학주의’ 문학관이다. 같은 좌담에 참석한 시인 정한아도 “미학적 분리주의가 (…) 항상적 분열의 반윤리성과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성폭력과 관련해 거명된 이들이 대체로 미학주의 계열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 <문학동네> 좌담에서 소설가 정세랑은 문제가 된 이들의 시집 절판과 성폭력 방지 작가 서약 같은 조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문학동네> 편집위원인 평론가 강지희와 문강형준은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문강형준은 “60년대 말 이후로 비평계에서는 작가와 작품을 분리시킨다”고 말했고, 강지희도 “우리가 지켜온 최소한의 예술적 자율성”이라는 말로 시집 절판이나 원고 청탁 배제 등의 조처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시작은 진보적이지만 결론은 보수적이 되는 아이러니”라는 문강형준의 말은, 비록 옳은 취지라고는 해도 그 수단이 예술의 자율성을 해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는 뜻으로 읽혔다.

<21세기문학> 좌담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의견 대립이 보이지 않았다. 평론가 고봉준은 “아방가르드나 초현실주의의 핵심은 삶을 바꾸는 것, 그 과정으로서의 예술”이라며 “그것을 문학의 자율성을 옹호하는 논리로 전유하면서, 마치 예술이 세상과 완전히 분리돼 있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는 말로 장은정과 정한아의 생각에 동조했다.

<문학동네> 좌담에서 강지희는 “문학동네의 편집위원이 되고 나니 그 모든 추근거림이 갑자기 사라졌다”며 문단 성폭력이 대부분 권력형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정세랑은 출판사 편집자 시절 경험한 성추행과 언어 성폭력이 이번 사태 와중에 다시 떠올라 고통스러웠다며 출판사 직원의 인권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가 친화적인 분위기로 이름높은) 문학동네 직원들이야말로 문학출판계 성폭력, 위계 폭력에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지 않나”라며 “뒤풀이나 접대, 개인적 연락, 작가 수행 등 (…) 직원들의 지나친 감정노동”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문학과 문학인에 대한 낭만적 신비화가 여전한 터에 문단 성폭력은 충격적이다 못해 허탈한 배신감조차 안겨주었다. 그렇잖아도 꾸준한 하락세를 보여온 문학의 사회적 위상에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은 아프더라도 환부는 도려내고 곪은 자리는 고름을 짜내야 한다. 문학관에서부터 청탁과 출판, 심사 같은 제도적 측면, 작가와 출판사 편집자의 관계 등에서 문제가 드러난 부분은 과감하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 표절과 성폭력이라는 연이은 추문을 딛고 한국문학이 되살아날 길은 뼈를 깎는 혁신에 있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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