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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황조롱이 부리가 렌즈에 부딪힌 순간 / 김진수

등록 2016-12-28 18:33수정 2016-12-28 20:46

김진수
<한겨레21> 사진기자

초점거리가 아주 짧은 마크로 렌즈로 바꾸고 황조롱이 둥지에 바짝 다가섰다. 뷰 파인더 너머 새끼를 품에 안은 채 잔뜩 긴장한 어미 새가 보였다. 잠시 숨을 고르고 조금 더 가까이 가는 순간 카메라 렌즈 표면에 둔탁한 것이 와 닿았다. 새 눈만 보고 카메라를 들이밀다 부리와 렌즈가 부딪쳤고 날카로우면서 딱딱한 느낌이 손에 왔다. 새는 움찔거렸고 나도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강렬한 손맛이었다.

아파트 주인 부부가 황조롱이 둥지를 살펴보고 있다. 집주인은 비 내리는 날에만 집에 계셨다.
아파트 주인 부부가 황조롱이 둥지를 살펴보고 있다. 집주인은 비 내리는 날에만 집에 계셨다.
생후 첫 자극이 각인된 어린 새처럼 카메라에 전해졌던 손맛이 가시지 않았다. 초보 사진기자 때는 매일 벌어지는 시위나 인터뷰 또는 축구, 야구, 육상 같은 스포츠까지 다양한 분야가 다 새롭고 흥미로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최초의 손맛’이 각인된 뒤에는 새를 찾거나 보고 있을 때 아드레날린 분비가 제일 왕성했다.

새와 강렬한 조우를 하게 된 데는 운도 따랐다. 둥지는 노부부만 사는 아파트 베란다 창밖에 놓인 화분에 있었다. 황조롱이는 도시에 가장 잘 적응한 맹금류다. 도심에서도 쉽게 눈에 띄지만 둥지는 쉽게 노출되지 않는 법이다. 이곳만큼 가까이 가기 좋아서 촬영이 손쉬운 둥지는 없었다. 또 주인 부부가 악취 나는 둥지 청소를 하고, 가끔 먹이를 주기도 해서 새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둥지 옆으로 가까이 가도 날아가지 않을 정도였다.

행운은 또 있었다. 당시는 일산 신도시 건설이 시작된 지 10년쯤 지났을 때다. 아파트 주변에 아직 공터가 많을 때라 텃밭이 널려 있었다. 밭을 많이 빌려놓은 노부부에게 농사일이 많았다. 해가 뜨기 무섭게 집을 비운 채 밭일을 나가셨다. 마음씨 좋으시고 바쁘기까지 한 주인은 현관 열쇠를 내게 주셨다. 덕분에 난 시간이 날 때마다 자유롭게 집을 드나들며 새를 볼 수 있었다. 주인은 비 내리는 날만 집에 계셨다. 유난히 가물었던 그해 봄, 두 분이 집에 계셨던 적이 딱 한번밖에 없었다.

산란 장면부터 지켜보지 못한 점은 아쉽다. 하지만 알을 품고, 먹이 물어 오더니 핏덩이 같은 어린 새가 알을 깨고 나와 형제간 먹이 경쟁을 하며 자라서 둥지를 떠날 때까지 50여일 넘게 새의 둥지를 지켜봤다. 주인 부부가 새와 가족처럼 지내듯이 나도 빈집에서 혼자 자장면을 시켜 먹으며 같은 식구가 됐다. 또 새와 안면이 생긴 덕분에 카메라 렌즈로 새의 부리와 랑데부에 성공한 셈이다. 황홀한 손맛에 홀려 지금까지 새를 보러 다니는 호사스런 취미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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