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상담가/춘해보건대 교수 2016년에 여성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유통된 용어는 ‘여성혐오’이다. 그 낱말은 강남역 살인사건을 비롯하여 여성들이 경험한 부정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여성혐오’가 제목으로 들어간 책이 여러 권 출판되었고, 작년에는 ‘여성혐오’를 이슈로 다룬 토론회도 많이 열렸다. 극단화된 여성차별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사방에서 그 낱말을 만나면서 과연 그 사용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위키백과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혐오는 어떠한 것을 증오, 불결함 등의 이유로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감정으로, 불쾌, 기피함, 싫어함 등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강한 감정(사람이 느끼는 자극의 수준을 기준으로 함)을 의미한다.” 교육심리학 용어사전은 혐오를 “자신에게 해로운 것을 제거하고자 할 때 발생하는 정서를 말한다. 이때에는 그것을 배설하거나 토하고 싶은 행동을 보인다”고 정의한다. 혐오는 제거도 포함하는 감정이고 실제로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경우도 많아 ‘여성혐오’라고 부르는 것은 맞는 것으로 얼핏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여성 살해는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의 이아손처럼 “여자 없이 자식을 낳고 여자 같은 것은 없어져버렸으면!” 하며 여성을 멸종시키고 싶어 하며 저지르는 일은 아니다. 강남역 여성 살해자의 동기도 여성이 자신을 무시하여 분노했다는 것이지 여성 자체를 제거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말인 ‘여성숭배’가 있는 것도 제거가 목적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러 면에서 ‘혐오’라는 낱말을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더 중요한 이슈는 이 용어가 혐오하는 자의 관점에서 정의된 행위자 중심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여성혐오’는 누군가 여성을 혐오한다는 것이지, 대상이 되는 여성이 혐오당한다고 느낀다는 것을 표현하는 용어는 아니다. 대체로 약자의 피해와 관련된 이슈를 다룰 때, 약자의 관점에서 표현하는 것이 평등을 지향하는 방식이다. 많은 일들이 강자의 관점에서 강자의 언어로 서술되어서, 약자조차 강자의 관점을 내면화하여 사용하기 쉽다. 따라서 언어와 담론을 바꾸려면 약자의 관점에서 정의된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나라를 잃었던 36년에 대해 ‘식민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다, 이제는 ‘강점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성폭력에서도 가해자의 관점을 보여주는 ‘가해’와 ‘2차 가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 이제는 피해경험자의 관점을 보여주는 ‘피해’와 ‘2차 피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격하는 현상을 다루려면, 약자인 여성의 관점에서 자신의 경험을 살려 정의하는 이름을 찾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여성숭배’라는 낱말도 존재하기에 여성숭배는 여성혐오와 다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을 필요로 하면서 남성의 관점에서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때 혐오하고, 원하는 행동을 할 때 숭배한다는 것이기에 본질적으로 같다. 여성이 남성의 종속계급이 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둘 다 폭력이다. 어떤 형태로든 여성폭력을 접할 때 내가 경험하는 것은 모욕감이다. 문제는 나를 혐오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는 데에 있다. ‘여성모욕’이 여성의 관점에서의 경험을 분명하게 명명하며, 여성이 종속계급에 갇히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용어가 될 수 있는지 새로운 용어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