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지성팀 선임기자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셰익스피어 희곡 <리어왕> 1막4장 대사를 제목 삼은 이 소설은 문제적 작가 이인화의 출생신고와도 같았다. 1992년 봄 제1회 작가세계 문학상을 받은 이 소설이 공지영과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소설을 표절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작가 자신이 본명인 류철균의 이름으로 표절이 아니라 혼성모방(패스티시)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기법이라며 ‘셀프 평론’을 한 일도 마찬가지. 평론가 남진우가 <현대시학> 2015년 12월호 권두시론으로 쓴 ‘표절의 제국’이라는 글에 따르면 이인화의 표절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류철균이 문제의 셀프 평론에서 시인한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키친>의 경우 수십쪽을 거의 통째로 들어다 앉혔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작가 버나드 맬러머드의 소설 <월세입주자> 역시 심각하게 표절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이인화는 그러나 이듬해 낸 소설 <영원한 제국>으로 화려하게 재기한다. 이 소설이 왕권중심주의 편에 섰으며 그것이 박정희 옹호로 이어진다는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념으로만 재단하기에는 장점이 적지 않았다. 움베르토 에코 소설 <장미의 이름>의 표절이라는 주장도 너무 과해 보였다. <한겨레> 1993년 7월20일치에 나는 <영원한 제국>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기사를 썼고, 내처 이인화의 주간 연재물 ‘문학 속의 그 사람’을 기획 섭외했다. 1994년 2월16일치 허준에서부터 시작해 제갈량, 이백, 마오쩌둥, 공자 등으로 나아간 연재는 비교적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4월20일치의 9회 연재분 노기 마레스케에서 문제가 터졌다. 메이지 ‘천황’을 따라 순사한 천황주의자 노기 대장을 유보 없이 칭송한 이 글이 나가자 작가와 신문을 비판하는 독자 전화와 투고가 쇄도했다. 결국 이인화의 연재는 그다음주 일본의 다조(茶祖)로 일컬어지는 센노 리큐 편으로 마무리하고, 문학평론가인 임헌영 현 민족문제연구소장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이인화의 본색이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은 1997년에 낸 박정희 전기소설 <인간의 길>(1부 전3권)에서였다. 이 소설을 내고 한달여 뒤인 그해 5월에 이인화는 <한겨레>가 기획한 박정희 찬반 논쟁에 찬성 쪽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이인화는 2000년 1월 제24회 이상문학상을 받으면서 다시 구설에 올랐다. 이상문학상 심사 대상은 ‘전년도 1월부터 12월까지 한해 동안 발표한 작품’으로 되어 있는데, 이인화의 수상작 ‘시인의 별’이 1999년이 아닌 2000년 1월호 <문학사상>에 발표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사 쪽은 1월호 잡지가 그 전해 12월에 발행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주최측이 이인화에게 상을 주기 위해 규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인화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꽤 오랜만인 2012년 11월이었다. 그사이 온라인 게임에 빠져 있었다는 그가 <지옥설계도>라는 ‘게임 소설’을 내놓은 것.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그는 예의 사람 좋은 웃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해 왔다. 그 무렵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문에서 각각 박근혜와 문재인을 지지하는 문인에게 글을 받아 싣자는 기획안이 나오자 나는 당장 이인화를 떠올리고 그에게 원고 청탁 문자를 보냈다. 그에 대한 답이 그와 마지막으로 나눈 교신이었다. “선배님, 저 박근혜 지지 아닙니다. ㅎㅎ” 그 말은 참말이었을까 거짓이었을까. 최순실 딸 정유라의 학점 특혜 의혹으로 죄수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보자니 그 마지막 문자가 계속 떠오르는 이즈음이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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