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
<한겨레21> 사진기자
회사에서 가까운 효창공원에 뒤뜰처럼 자주 산책을 다닌다. 한번은 산책 중 못 보던 새가 눈에 스쳤다. 흰눈썹황금새. 마침 노랫소리를 들었다는 제보가 있어 둥지를 찾아보려던 참이었다. 팔색조, 긴꼬리딱새와 함께 한국의 아름다운 새 목록 상위에 올릴 만큼 화려한 새라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평소 만나기 쉽지 않은데, 도심의 생태 섬 같은 공원을 휴식처로 삼아 번식지로 이동 중인 개체로 보였다.
휴대폰의 새소리에 끌려 흰눈썹황금새 수컷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내를 벗어나 멀리 나가는 번거로움도 없이 자투리 시간 탐조로 ‘내가 만난 새’ 목록에 또 한 종을 추가하게 됐다. 주변에 모르고 있던 자연이 살아 숨 쉬고 있고, 귀한 새도 여럿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공원 관리사무소로 갔다. 공원의 허가를 얻어 위장용 텐트를 설치하기로 했다. 자리는 공원의 인공 연못 근처가 적당했다. 물이 흔치 않은 도심에서 연못은 새에게 우물과 목욕탕 역할을 한다. 공원의 새가 하루에도 몇 번씩 찾는 곳이다.
혼자 텐트 안에 있으면 참 여러 생각이 든다. 새가 금방 올까? 오늘은 왜 이렇게 안 나타나지? 사진이 맘에 안 드는데 또 와 주겠지? 혼자 안절부절못한다. 번식기엔 둥지 근처에서 작은 구멍으로 렌즈만 내밀고 번식 장면을 지켜볼 때도 있다. 먹이를 물어 올 때가 지났는데… 내가 둥지와 너무 가까운가? 새가 이미 눈치챘나? 날이 뜨거운데 어린 새 체온이 너무 오르면 어떡하지? 어미가 날개 그늘이라도 만들어줘야 할 텐데. 더 안절부절못한다. 그래도 새와 숨바꼭질하듯 위장텐트에 숨어 있으면 얻는 즐거움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새만 보고 있다는.
공원에서 혼자 위장텐트에 들어가 새를 기다리자니 뭔가 어색하다. 싱그러운 숲에서 느끼던 호젓함은 간데없고 낯선 새와 만난다는 긴장이나 설렘과도 거리가 멀다. 공원에 봄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많고, 낯익은 회사 직원도 뒤뜰 같은 공원에 자리한 위장텐트 옆으로 지나다닌다. 한참이 지났지만 이번엔 새도 소식이 없다.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흰눈썹황금새를 부를 새소리 파일을 찾았다. 저장된 1700여개의 엠피스리 파일은 러시아 알타이 고원과 몽골 바위산의 새와 통하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세력권 안 낯선 침입자의 소리를 들으면 맘이 급해진 새가 곧 나타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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