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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이 중앙에게] 어쩌면 대통령 선거보다 중요한 것 / 황민호

등록 2017-01-25 18:26

황민호

<옥천신문> 제작국장

위험하다. 내 삶을 저당잡을 수 있는 권력자를 5년마다 선택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10년 동안의 경험을 아로새겨보면 버티고 싸우는 것 외에 답이 없다는 것은 사실 절망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 게임이 반복되는 이유는 ‘로또’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공치사’에 가깝고 선출된 권력은 언제나 그래 왔듯이 ‘대리인’이 아닌 ‘위임권력자’로서 권력을 뜻대로 행사해왔다. 일상적으로 제어되지 않는 권력을 어찌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을까? 촛불을 든 주권자들은 선거 때만 되면 미디어에 거론된 후보들의 인물평을 하면서 팬덤 정치에 흡수된다. 쫙 빨려들어간다. 마치 수능에서 오지선다형의 답을 고르듯이 갑론을박하면서 블랙홀처럼 빠져든다. 무게중심이 흐트러지고 동등한 마당이 아닌 무대와 객석으로 구분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박근혜와 트럼프를 보고서도 이 선거제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메시아가 올 것이다’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다. 이런 희망이 민을 수동적이고 체제복속형 인간으로 만들었던 것 아닐까?

언론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추문과 청문회에서 밝혀진 장관과 관료들의 추악함을 보더라도 우리 삶을 그들에게 잠시나마 맡겼다는 것이 참 끔찍하지 않은가? 그래서 지역과 삶의 공간이 중요하다. 집회와 시위에 모여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중하지만, 일상적인 만남으로 우리의 투쟁을 설계하고 토대를 건설하는 일이 중요하다. 박근혜 탄핵만을 외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지역 안의 박근혜를 물리고, 자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지역 안의 일상적인 공론장이 필요하다. ‘풀뿌리 민주주의’, ‘광장의 촛불시민혁명’ 등의 휘황찬란한 단어들은 사실 종결지점이 아니라 불이 붙어야 할 도화선이다.

서울로 모였던 각 촛불들이 지역으로 흩어져서 일상의 생활정치 마당을 깔았지만 그것이 먼 훗날 회상할 추억이 돼서는 곤란하다. 한번 모여든 이들이 흩어지지 않으려면 탄핵 이후 설령 원하는 새 대통령이 뽑힌다 하더라도 우리 삶을 스스로 설계하여야 한다. 끔찍한 일상을 토해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지역에서부터 논의해야 한다. 이미 바닥을 쳐서 땅을 뚫고 들어가려는 삶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자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인의식은 악착같이 이를 물고서 더불어 해결하려는 의지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읍면동에서의 작은 공론장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공론장을 다지지 못한다면 미디어에 일방적으로 흩뿌려지는 팬덤정치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모든 일을 다 국가적 문제로 치환하면 답이 없다. 대통령을 잘 뽑는 것 외에는 별 할 일이 없다. 대리하는 선출직을 뽑아놓고 제어가 안 된다면 그게 무슨 민주주의인가. 선출을 가장한 독재지.

마음속에 든 촛불이 서로의 삶을 보듬으면서 우리 삶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아내길 원한다. 집회와 시위를 넘어서서 일상의 문화로 자리잡길 희망한다. 그래서 하나씩 고쳐나가는 힘이 필요하다. 우리는 힘이 없는 게 아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힘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절대반지의 또 다른 주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역마다 작은 공론장들이 동심원처럼 중첩되고 교차하면서 연대의 끈을 잇는 거라 생각한다. 한 번의 붉은 인장으로 그 많은 권력을 몇 년 동안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 자체가 퇴행이다. 내 삶을 한 번도 마주하고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못나도 어설퍼도 엉성해도 배운 것 없어도 선출되지 않은 우리가, 그냥 삶을 사는 우리가 내 이웃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삶을 제어하길 원한다. 우리는 직접 마주할 수 있으니까. 언제고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부대끼고 부딪치며 겪어왔으니까. 물론 대통령 선거도 중요하다. 그리고 선거제도의 개혁도 절실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주인됨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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