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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기본소득보다 사회보장이 우선 / 양재진

등록 2017-02-02 18:02수정 2017-02-02 20:48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진보 대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 진영 내에서도 기본소득제 논의가 뜨겁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기본소득제 공약이 불을 붙였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해 화제가 된 핀란드도 연 160억원의 예산으로 2000명의 실직자에게 2년간 시범 실시하는 데 그친다. 그런데 이 시장의 기본소득제는 그야말로 파격이다. 크게 두 가지다. 전국민 기본소득은 5000만 국민에게 연 30만원씩(월 2만5천원)을, 생애주기별 기본소득은 아동, 청소년, 청년, 노인 그리고 장애인과 농어민에게 연 100만원씩(월 약 8만3천원)을 지급하는 안이다. 각각 15조원과 28조원씩 총 43조원이 매년 소요된다. 우리나라 국방예산이 총 40조원인 점을 고려하면 막대한 규모다.

15조원은 임야, 농지, 주택, 아파트, 상가, 공장 등 모든 토지에 국토보유세를 부과해 마련하고, 28조원은 현재 400조원인 국가예산의 7%를 감축해 마련하겠다고 한다. 현재 재산세수가 5조원 정도이고,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가 국가예산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 때문에 재원조달의 가능성에 회의가 일고 있다. 그리고 막대한 예산이 기본소득에 투입될 때, 다른 공공서비스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그러나 대담한 복지정책으로 여겨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재원조달의 현실성과 타 공공서비스 위축 효과를 떠나서, 과연 기본소득이 국민들의 복지를 증진할 수 있는 제도인지 의문이다. 사회보장의 원리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현재의 복지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위험에 빠졌을 때 보상을 해주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 자동차보험과 비슷하다. 평소에 사회보험료와 세금을 납부하다가, 아플 때, 산업재해나 실업을 당했을 때, 은퇴했을 때, 또는 출산과 육아 시에 현금이나 서비스로 복지급여를 받는다. 장애를 얻었거나, 빈곤선 이하밖에 못 벌 때도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소득이 충분하고, 건강하거나 아이가 없는 경우에는 복지혜택을 받지 못한다. 보험료 열심히 냈어도 자동차 사고 안 나면 보험금을 못 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위험 발생이나 복지의 필요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동일한 액수를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정기적으로 준다. 대신에 위험에 빠졌다고 해서, 사고가 크게 났다고 해서 더 주는 경우는 없다.

무조건 모든 사람에게 정기적으로 주니, 이보다 더 평등한 재분배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사고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주다 보니 돈이 많이 든다. 이 시장의 전국민 기본소득이 월 2만5천원에 불과하지만 1년 소요예산액이 15조원인 이유이다. 만약 이 돈을 기존의 사회보장 방식대로 사용하면, 현재 20만원인 기초노령연금을 40만원으로 인상하는 데 7조8천억원을 쓰고, 13만명의 청년들에게 훈련수당으로 월 최대 40만원을 주는 청년취업성공패키지의 대상 인원을 65만명까지 늘리고 수당을 80만원까지 올리는 데 1조2천억원을 쓸 수 있다. 그래도 6조가 남는다.

이 시장은 기본소득 43조원을 모두 현금이 아닌 골목상권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하겠다고 한다. “지역상품권으로 560만 골목 사장님 ‘기’ 팍 살리겠습니다”라는 이 시장의 설날 메시지처럼, 당장 골목상권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국민복지를 증진하겠다는 이 시장의 취지는 살리기 어렵다. 43조원이라는 막대한 자원은 모든 국민들의 사회보장을 강화하는 데 쓰여야 한다. 보육의 질을 높이고, 청년들 일자리 창출하고, 노인빈곤 없애고, 장애인 수당을 현실화며 의료보장성을 강화하는 일이 상품권을 골고루 나눠주는 것보다 시급하다. 기본소득제가 평등한 분배 정책일지는 모르나, 현 단계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복지 정책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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