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씨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뒤로 대선 후보들 간 공약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각 후보는 장밋빛 일자리 창출 방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왠지 희떠운 소리로 들린다. 안팎 경제 상황으로 봐서는 고용 여건의 개선은커녕 고용 대란의 위험이 더 우려된다. 일자리 문제는 누가 대권을 잡든 버거운 숙제다.
일자리를 얻기 힘든 이유는 일이 줄어들거나 일할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는 일은 분명히 많은데도 일자리는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카를 마르크스는 ‘부불노동’(unpaid labor) ,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숨겨진 일자리’라는 뜻이다.
대표적인 예가 가사노동이다. 우리나라는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이 심하게 여성에게 쏠려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성인 시간 사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기혼 여성이 가사노동에 투입하는 노동시간은 남성보다 5배나 많다. 조사 대상 26개국의 평균격차인 2배를 훌쩍 웃돌며, 압도적 1위다.
여성들이 거의 전담하고 있는 가사노동에 대해 고용통계는 ‘비경제활동’으로 분류한다. 이렇듯 국내 전업주부 700여만의 일자리는 지하화되어 있다. 우리 경제는 고급식당 셰프의 요리만 칭송할 뿐 어머니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의 가치는 0원으로 취급한다. 여성정책연구원은 국내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임금노동자의 시간당 평균임금으로 계산하면 월 3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했다.
없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보다 숨겨진 일자리를 양성화해 사회적 보상을 강구하는 것도 엄연한 일자리 대책일 수 있다. 일은 하는데 일자리로 보이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말처럼 희망은 모순 속에 숨어 있다.
박순빈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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